디즈니플러스 영화 추천: 127시간_자기 팔을 자른 실화

디즈니플러스에서 볼 수 있는 실화 영화 127시간을 추천합니다. 127시간은 팔이 협곡위로 떨어진 바위틈에 껴 127시간만에 자기 팔을 자르고 탈출한 아론 랠스턴에 대한 실화 영화입니다. 살기위해 등산용 칼로 자기 팔을 자른 한 인간의 위대한 삶에 대한 의지가 감동을 주는 영화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영화 줄거리

2003년 어느 금요일 오후, 평소 등반이 취미이던 아론 랠스턴은 홀로 미국의 대표적인 캐년 중 하나인 유타주 블루존 캐년 등반에 나선다. 해방감을 느끼며 아무도 없는 광활한 협곡 사이를 자유롭게 누비던 중 갑자기 위에서 바위가 떨어진다. 미처 피하지 못하고 손이 바위와 협곡 벽에 틈에 꽉 끼어버린 아론. 움직일 수가 없다.

마치 동네 뒷산 산책하듯 가볍게 나온 운동이라 챙겨나온 물품은 물 1리터와 산악용로프, 캠코더 그리고 작은 칼 뿐. 언제 올지 모르는 구조대를 기다리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언제쯤 구조될 수 있을까?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도 없으니 오늘 당장 실종 신고가 되지도 않을테고 누군가 이곳을 지나갈 때까지 꼼짝없이 기다려야만 한다. 아까 인사를 나눈 등반인들이 나를 발견하고 신고 해주면 좋으련만 그들이 떠난 방향을 보면 그럴 가능성도 희박하다.

월요일. 아론이 출근하지 않자 회사에선 그의 엄마에게 연락을 했고 사고 3일만에 드디어 실종 신고가 됐다. 주말에 쉬고 출근한 공원 관리자 역시 아침 일찍부터 주차되어 있는 아론의 차를 보고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얼마 뒤 차의 주인이 실종 신고 된 아론인 것으로 밝혀졌고 마침내 수색이 시작됐다.

이런 상황을 알 수 없는 아론은 방전된 캠코더 배터리와 바닥난 물처럼 점점 체력이 고갈됐다. 구조를 기다리는 건지 죽음을 기다리는 건지 알 수 없이 흐르는 시간속에 자연스레 지난 날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새삼스레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 아론. 이대로 죽을수만은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한편 바위 틈에 꽉 낀 손은 피가 통하지 않으니 썩기 시작했다. 계속 두면 팔 쪽으로 점점 번져 멀쩡한 팔까지 괴사할 판이다. 괴사가 번지는 걸 막고 이곳에서 탈출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뿐이었다. 그건 바로 팔을 자르고 여기서 나가는 것. 자칫하면 많은 출혈로 죽을수도 있지만 팔을 자르지 않아도 이대로라면 어짜피 탈진해 죽을 것이다.

칼날이 무뎌 생각처럼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한 번에 잘 되면 좋을텐데 그렇게 되지 않으니 고통의 시간이 더 길어졌다. 그래도 어찌어찌 이제 마지막으로 뼈만 자르면 되는데 이 칼로는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순간 떠오른 아이디어로 팔을 꺾어 부러트렸다. 생각보다 한 번에 쉽게 되어 왜 저 무딘 칼로 이 고생을 했는지 화가 날 정도였다.

초인적인 의지로 로프를 이용해 협곡 틈에서 127시간만에 간신히 지상으로 올라온 아론. 이 블루존 캐년에서 그가 실종됐다는 소식을 알고 있던 다른 등반인에게 바로 발견되어 도움을 받는다. 그리고 또 마침 그 근처에 있던 수색 헬기에 금방 탑승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실제 뒷 이야기

  • 아론이 팔을 자르는 데에는 40분 정도가 걸렸다. 그의 잘린 손과 팔 일부는 바위 밑에서 회수됐다. 그 바위를 옮기는 데는 성인 남자 13명과 윈치, 유압 잭이 필요했다. 그의 팔은 화장되었고 재는 아론에게 주어졌다.
  • 구조 당시 그는 전체 혈액의 25%를 잃은 상태였다. 조금만 늦었으면 과다출혈로 사망했었을 거라고

목숨을 건진 이후 아이러니 하게도 아론은 한동안 분노에 사로잡혀 있었다. 결국 이렇게 팔을 자를거면 진작 할 걸 127시간, 무려 엿새동안 왜 그 고생을 한 건지 화가 났다. 팔을 자를 때도 마지막에 비틀어서 부러트리니 한 번에 쉽게 되는 걸 40분 동안이나 마그마에 팔을 담근듯한 통증을 느끼며 그 고생을 했다는 거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지나고 보니 그가 127시간을 고생하고 마침 그 타이밍에 지상으로 올라온 데에는 어떤 보이지 않는 뜻이 있는 것 같았다.

지상으로 올라온 뒤 바로, 그의 실종 소식을 알고 있던 어느 가족을 만났다. 그 가족은 역할을 나눠 그에게 먹을 것을 주며 피를 많이 흘린 그가 정신을 잃지 않도록 옆에서 계속 돌봐주었고, 동시에 그가 구조대를 빨리 만날 수 있게 달려가 신고해주었다. 그리고 또 마침 그 근처에 있던 수색 헬기에 바로 탑승해 빨리 병원으로 옮겨져 그 많은 피를 흘리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렇게 다 지나고 보니 그는 정말 최고의 타이밍에 팔을 자르고 탈출 한거였다. 그 넓은 블루존 캐년에서 그 가족이 마침 그때 그 곳을 지날 확률은? 마침 수색 헬기가 그 근처에 와있을 확률은? 이 낮고 낮은 확률이 교차하는 기적같은 그 타이밍이 아니었다면 그는 힘겹게 탈출 했어도 결국엔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그는 분노를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시간이 한참 지나야지만 그 위기가 기회가 됐다는 것, 그 불운이 행운의 마중물이 됐다는 것이 보인다. 그렇게 깨닫기 전까지 우리는 나 자신 또는 신을 원망할 뿐이다. 어쩌면 지금도 신의 완벽한 타이밍은 진행되고 있다.

아론 랠스턴의 현재

현재 아론 랠스턴은 이 경험과 깨달음을 바탕으로 동기부여 강의를 하고 있다. 그의 이야기는 127시간 이라는 제목의 영화, 책으로 나와있다.

책 추천: 하틀랜드 감동 실화

‘게을러서 가난하다’는 편견이 편견이라고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입니다. 정말로 게을러서 가난해진 것을까요? 교육을 통해 가난과 가정폭력의 대물림에서 벗어난 세라 스마시는 하틀랜드라는 자전적 에세이를 통해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더불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라는 미국에서 ‘게을러서 가난하다’는 통념과 달리 뼈 빠지게 일하고도 가난을 벗어나기 힘든 이유를 보여줍니다.

외할머니에서 엄마로 이어진 10대때 첫 출산

그녀의 엄마는 세라 스마시를 10대때 낳았습니다. 그녀의 엄마 역시 외할머니가 10대때 낳은 아이였습니다. 세라가 태어났을 때 외할머니는 고작 34살이었습니다.

외할머니는 6번 결혼했습니다. 결혼 기간이 짧았던 원인은 모두 남편의 가정 폭력이었습니다.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미국의 깡촌인 켄자스에서 가난한 여성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결혼밖에 없었습니다. 결혼을 해야만 지긋지긋한 집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 것이죠. 6번의 결혼은 6번의 탈출이었습니다. 그러는 과정동안 자식, 특히 딸에게 본인과 비슷한 삶을 물려주게 된다는 건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세라의 엄마 역시 세라의 외할머니가 그러했듯 10대 때 세라를 낳았습니다. 다만 외할머니보다 운이 좋았던 부분은 세라의 아빠는 자식들을 차에 둔 채 밤새 술집에 있긴 했어도 가족에게 폭력을 휘두르진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일정한 주소지 없이 트레일러를 전전하며 사는 극빈층과 달리 그래도 세라네 가족에겐 안정된 집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집이 있었고, 켄자스 남자치곤 가정적인 아빠 덕택에 세라는 10대때 출산,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며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외할머니나 엄마와 다르게 교육을 통해 가난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질적인 관점에서 집에 집착하다 보니 원초적 욕구가 충족되어도 사람의 마음은 다칠 수 있다는 걸 자꾸 잊게 돼. 어딘가에 속하고자 하는 욕구도 원초적 욕구에 속하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누리지 못할 때가 많지.”(본문 중)

어린 시절

캔자스는 미국에서 대표적인 깡촌입니다. 이곳에서 몇 대째 농사를 지으며 살고있는 백인들은 햇빛에 벌겋게 탄 목 때문에 “레드넥”이라고 불립니다. 열심히 일해서 레드넥이 됐는데 아니러니 하게도 레드넥에는 게을러서 가난한 백인이라는 조롱의 의미가 담겨있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제대로 교육 받지 못했고 거의 항상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깡촌 켄자스에서 놀거리라곤 음주밖에 없었기 때문이죠. 그래도 열심히 일했습니다. 집도 없이 트레일러를 전전하며 살아도 굶지는 않았기에 아무런 문제도 못 느끼며 말이죠.

한 번은 세라의 아빠가 일을 하다 크게 다쳤습니다. 이런 경우 자신의 권리에 대해 아는 사람은 산재 처리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아빠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운이 없었거니 하면서 모든 걸 홀로 감당합니다. 아빠가 일을 못하는 기간동안 수입은 없는데 오히려 치료비까지 지출되니 안 그래도 늘 돈이 부족했던 세라네 집에는 돈이 더 부족해집니다.

벗어날 수 있었던 계기

세라는 외할머니와 엄마의 삶을 보며 다짐한 게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출산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아이가 많으면 그만큼 돈도 많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임신을 했을 때부터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세라가 볼 때 여자에게 임신과 출산은 가난으로 달리는 급행열차일 뿐입니다. 외할머니와 엄마가 출산을 한 덕택에 내가 이렇게 존재하고, 그 부분엔 감사하지만 나같은 삶을 내 딸에겐 왠지 물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하루는 세라의 아빠가 일을 하다 큰 화상을 당합니다. 얼굴부터 팔까지 상체 절반이 불에 탔고 뼈가 보일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습니다. 당연히 당장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는 게 상식입니다. 그런데 아빠는 그렇게 하지 않고 종교에 의지했습니다.

쳐다보기도 힘들 정도로 너무 끔찍한 그 상처를 병원에 가지 않고 신께서 치료해주실 거라며 집에서 고통을 감내하는 아빠를 보며 세라는 ‘믿음’이 얼마나 무서운지 깨닫습니다. 신께서 치료해준다는 믿음이 병원에 가지 않게 만들고, 그저 운이 나빴다는 믿음이 산재처리를 요구하지 않게 하고, 레드넥이라고 비아냥을 당해도 나는 중산층이라는 믿음이 문제 의식을 갖지 못하게 합니다. 세라는 절대 아빠와 같은 믿음을 갖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세라의 엄마, 외할머니가 그러했듯 세라 역시 10대때 집을 떠납니다. 다른 점은 세라의 엄마, 외할머니는 남자에게 갔지만 세라는 학교에 갔다는 점입니다.

“캔자스의 흙바닥에 살고 주방 조리대 위엔 버터 대신 크리스코 쇼트닝 큰 통이 있고 1달러짜리 환불 쿠폰을 꼬박꼬박 모아 발송하면서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부른다는 건 안빈낙도의 정신 승리이자 동시에 경제 구조에 대한 서글픈 무지의 소산이었어.” (본문 중)

하틀랜드를 쓴 세라 스마시의 현재

세라 스마시는 스마시 가문에서 처음으로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대학을 다니며 세라는 자신의 가족 더 나아가 열심히 노동하는 켄자스 주민 대부분이 가난한 이유가 세라의 아빠처럼 그저 운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몇 대를 이어진 가난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가령 미국 빈곤층은 은행에서 정부 지원금을 인출할때마다 수수료를 내야 하는데 인출 한도가 겨우 25달러라 수수료를 몇 번이나 내야합니다. 이런 식으로 사회는 가난한 사람의 얼마 안 되는 돈까지 악착같이 가져갑니다.

그런데 몇 대에 걸쳐 가난이 유전된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지 못합니다. 그저 순응할 뿐입니다. 일하다 다쳐도 산재 처리를 요구하지 못하고 그 손해마저 감당하며 더 가난해져도 그저 운이 없어서 그런 줄로만 압니다. 왜냐면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교육을 통해서만 무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가난은 교육받을 기회마저 박탈합니다.

세라 스마시는 하틀랜드를 통해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 가난이 대물림 될 수밖에 없는 개인적, 사회적 이유를 읽기 쉽게 풀어내었습니다. 이 책은 2019년 Kansas Notable Book Award를 수상하였습니다.

현재 세라 스마시는 언론인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책추천: 사막의 꽃 와리스 디리 영화 데저트플라워

와리스 디리의 실화를 다룬 사막의 꽃 도서와 이 책을 영화로 만든 데저트플라워를 소개합니다. 와리스 디리는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무려 4000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악습인 여성 할례를 세상에 처음으로 알린 인물입니다. 이 덕택에 2003년 UN에서는 세계 여성 할례 금지의 날을 지정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세상에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 악습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몰래 행해진다 합니다. 만약 와리스 디리가 이를 공론화 하지 않았다면 아프리카에선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더 희생되어야 했을까요. 여성으로서 많은 사람에게 드러내기 힘든 이야기를 용감하게 고백해 여성 할례를 아프리카 밖으로 꺼낸 와리스 디리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도서 사막의 꽃과 동명의 영화 데저트 플라워를 소개합니다.

어린 시절

와리스 디리는 1965년 소말리아 어느 유목민 부족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부족에겐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여성 할례를 하는 악습이 남아있었습니다. 여성 할례(FGM)는 여성의 순결을 지키고 성욕을 억제시킨다는 목적으로 5~6세의 여자 아이들의 성기 일부를 잘라내고 봉합하는 행위입니다. 무려 4000년 동안이나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 악습은 부족이 모여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움막에서 돌이나 오래된 칼 등으로 위험하고 비위생적으로 행해집니다. 마취도 안 된 상태에서 몸에 끔찍한 상처를 입은 아이는 보살핌을 받기는 커녕 한동안 그곳에 홀로 방치됩니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그곳에서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운 좋게 살아남은 아이는 계속 삶을 이어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아이는 고통속에 외롭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와리스 디리는 다행히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13살이 되던 해 또 위기를 맞이합니다. 60살 남자의 네번째 부인이 될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죠. 그녀는 이 결혼이 죽기보다 싫었습니다. 그래서 죽을 각오로 사하라 사막으로 도망칩니다. 그곳은 유목민 조차 위험해서 가지 않는 곳이었으나 그녀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습니다. 삶에 대한 강력한 의지로 더위와 갈증으로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겨가며 마침내 그녀는 먼 친척이 가정부로 일하고 있던 영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삶과 과거의 흔적

언어도 문화도 전혀 다른 이곳에서 와리스 디리는 새 삶을 시작합니다. 하루는 맥도날드에서 일을 하던 중 사진작가 테렌스 도노번(Terence Donovan)에게 명함을 받습니다. 처음에는 사기꾼인 줄 알고 신경도 안 썼습니다. 그러다 그가 유명 작가라는 걸 알던 룸메이트의 적극적인 권유로 그를 찾아가고 모델로 데뷔하는 행운을 잡게 됩니다.

모델 커리어는 순탄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말못할 고충이 있었습니다. 바로 비자 때문에 해야했던 위장 결혼 생활과 어렸을 때 받은 여성 할례 후유증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위장 결혼 생활은 정해진 기간을 유지한 뒤 벗어날 수 있었으나 후유증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성기가 봉합된 상태라 소변을 보는데 30~40분씩 걸리고 생리를 하는 건 더 큰 고역이었습니다.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친구들과의 대화로 그녀는 여성 할례가 아프리카만의 악습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습니다.

당장이라도 수술을 하면 후유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그게 참 어려웠습니다. 불편하기만 한 이 흔적이 결혼전까지 소중하게 지켜야 하는 전통이라고 어렸을 때 워낙 세뇌가 된 탓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마침내 용기를 내어 병원에 찾아갑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녀와 같은 나라 출신의 남자가 통역을 하러 들어옵니다. 그는 의사의 말을 그대로 통역하는 대신 그녀를 비난하고 악담을 퍼붓습니다. 결국 그녀는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야 맙니다. 그의 악담이 그녀의 두려움을 다시 자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목숨 걸고 사하라 사막을 걸어서 건넌 그녀에게도 깊게 세뇌된 믿음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건 이토록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계속 된 친구들의 격려 덕택에 다시 용기를 냈고, 결국엔 그 악습의 흔적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여성 할례를 알리다

어느새 톱모델의 위치에 오른 와리스 디리는 1997년 마리끌레르 잡지 인터뷰에서 자신이 여성 할례 피해자임을 최초로 고백합니다. 이를 통해 아프리카에서만 행해지던 여성 할례가 전 세계에 처음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이때부터 2003년까지 그녀는 UN의 홍보 대사로 활동하며 이 악습을 뿌리뽑는 데 일조합니다.

현재

1998년 와리스 디리는 첫번째 책 《사막의 꽃》(Desert Flower)을 발표했습니다. 이 책은 국제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동명의 영화(Desert Flower)로도 제작되었습니다. 그 뒤 《사막의 새벽》(Desert Dawn, 2004년), 《사막의 어린이》(Desert Children, 2005년), 《엄마에게 쓰는 편지》(Letter to My Mother, 2007년) 등 여러 편의 자서전을 발표하며 FGM 여성 성기 절제 근절을 위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2007년에는 프랑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으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슈발리에 훈장(Légion d’Honneur Chevalier)을 받았고 2019년에는 선학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이상으로 와리스 디리에 관한 실화를 다룬 책 사막의 꽃, 영화 데저트 플라워 소개를 마칩니다.

책 추천: 희망이 삶이 될 때_감동실화

희망이삶이될때

감동실화 희망이 삶이 될 때 도서를 추천합니다. <희망이 삶이 될 때>는 25살에 5년 안에 죽는다는 희귀병 캐슬만병 진단을 받았지만 다행히 건강을 회복하고 현재는 캐슬만병 치료에서 선구자 역할을 하고 있는 데이비드 파젠바움의 감동 실화에 관한 책 입니다.

캐슬만병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저는 이 책을 통해 처음 들어보았습니다. 여전히 생소하기만한 캐슬만병 이지만 그래도 캐슬만병이 이 정도까지 알려질 수 있었던 데에는 데이비드 파젠바움의 노력이 컸습니다. 그럼 먼저 캐슬만병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캐슬만병

  1. 정의 : 캐슬만병은 림프조직이 있는 장기들을 비대하게 만드는 희귀 혈액 질환. 단발성과 다발성,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단발성은 단일 림프절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반면, 다발성 캐슬만병은 신체의 한 부분만이 아닌, 여러 부분에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2. 원인 : 발병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일부 연구에 따르면 체내의 특정 단백질, 특히 인터루킨-6(IL-6)이 과잉 생산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또한 다발성 캐슬만병의 경우 헤르페스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3. 증상 : 만성피로, 전신 권태감, 야간 발한증, 오한, 발열, 두통, 식은땀, 체중 감소, 신경병증, 관절 통증, 전신 부종, 피부변화, 빈혈, 혈소판 감소증, 저알부민혈증, 염증수치 변화 등
  4. 치료 방법 : 위와 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 먼저 림프종인지 확인하고 림프종이 아닌 게 확인되면 신속하게 캐슬만병 치료를 진행해야 한다. 치료 방법은 그 유형과 중증도에 따라 달라진다. 국소 단일의 경우 절제술과 같은 외과적 수술을 주로 진행하며 방사선 치료를 병행 하기도 한다. 다발성인 경우에는 화학요법이나 방사선 치료를 진행할 수 있으며 약물, 골수이식 등으로 치료 한다.

자료출처: 한국건강관리협회 건강증진의원 인천(클릭하면 이동)

발병 전

데이비드 파젠바움은 1985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의사이고 어머니는 가정 주부인 유복한 중상층 가정에서 그는 학교에서 축구 선수로 활약할 정도로 건강하게 잘 자랐습니다.

그가 대학에 입학했을 무렵 그의 어머니를 뇌종양으로 잃게 됩니다. 이 일을 계기로 데이비드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공부와 운동을 열심히 병행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평소와 다르게 극심한 피로를 느낍니다. 시험을 앞두고 무리한 탓이라고만 여기고 에너지 드링크로 버티며 계속 몸을 혹사하다 결국 림프절이 비대해진 것을 발견하고 나서야 병원을 찾습니다.

치료 과정: 희망이 삶이 될 때

일단 입원은 했지만 정확한 원인은 알지 못했습니다. 복수가 차고, 다리가 부어오르고, 머리카락이 빠지고, 망막도 부어 실명할 위기에 까지 처합니다. 몸의 이곳 저곳에서 증세는 점점 심각해져만 가는데 병명을 몰라 근본적인 치료를 할 수 없으니 고통가운데 막막함까지 커져만 갔습니다.

그러다 다행히 캐슬만병 이라는 것이 밝혀집니다. 간신히 병명은 알았으나 의대생인 그에게 조차 생소한 희귀병인지라 제대로 된 치료법이 없었습니다. 마치 실험쥐처럼 온갖 약을 투여받았습니다. 그러면 잠시 증상이 호전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건 근본적인 치료가 아니었습니다. 일시적으로 증상만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이런 독한 약을 투여받으며 몸의 장기가 더욱 망가져 데이비드의 상태는 더욱 나빠질 뿐이었습니다.

5년 안에 죽을거라는 선고를 받았지만 그는 가만히 죽기만을 기다릴 순 없었습니다. 그나마 상태가 좀 좋을때면 임산부처럼 배가 부어올라 거동조차 힘든 몸으로 데이비드는 초인적인 정신력을 발휘해 캐슬만병에 대해 자료를 모으고 연구 했습니다.

워낙 희귀병이다 보니 당시만 해도 캐슬만병에 대한 정보가 취합되지 않고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었습니다. 치료법도 개인의 증상에 맞춰 다 달랐습니다. 데이비드는 이 정보를 통합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울러 타인이 받았던 치료법을 자신에게 실험해보며 이를 꼼꼼히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캐슬만병 네트워크(Castleman Disease Collaborative Network, CDCN)를 만들어 이 모든 정보를 공유하였습니다. 데이비드 파젠바움의 헌신에 의해 비로소 캐슬만병에 대한 토대가 마련되었고, 정확한 원인과 증상 그리고 적합한 치료법을 찾는 움직임이 하나로 모아질 수 있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그는 병이 회복되기 전까진 누릴 수 없을 것 같았던 일상 생활을 다시 영위하기 시작했습니다.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빠지고 퉁퉁 부어버린 몸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만나지 않았던 여자 친구를 다시 만났습니다. 마치 건강하다는 듯 사람들과 가벼운 농담을 주고 받았고 건강할 때처럼 가족과 즐겁게 식사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의학적으로 제대로 된 치료법과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어우러져 마침내 그는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데이비드 파젠바움은 그의 투병 생활 내내 힘이 되어줬던 여자친구와 행복한 가정을 이뤄 현재는 펜실베니아 의과 대학에서 조교수로 재직하며 캐슬만병 치료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자세한 그의 실화는 <희망이 삶이 될 때> 라는 제목의 책으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리뷰

식물인간 상태에서 4년만에 의식이 돌아왔지만 아무도 알지못해 9년간 화초처럼 가만히 자리만 지켰던, 인간 내면의 깊이에 대한 감동 실화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를 소개합니다.

엄마는내가죽었으면좋겠다표지

내 몸이 감옥이 되다

마틴 피스토리우스는 1975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났습니다. 건강하고 평범하게 잘 자라던 그가 12살이 되던 해, 갑자기 몸에 이상을 느껴 학교에서 조퇴를 하고 집에 돌아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13년 동안 그는 식물인간 상태로 침대에 누워있어야만 했습니다. 부모는 그를 회복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였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원인도, 해결 방법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마틴을 포기할 수도 없던 그들은 끝이 안 보이는 길고 긴 고통의 터널에 갇혀버리고 맙니다.

처음 4년 동안 마틴은 의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이유도 모르게 쓰러졌던 것처럼 역시 알 수 없는 이유로 의식이 돌아옵니다. 몸은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요. 그는 자신이 의식을 회복했다는 걸 사람들이 금방 알아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날부터 마틴은 차라리 의식이 없기를 바랄 정도로 끔찍한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했습니다. 무려 9년 동안을 말이지요.

  • 다른 사람들의 눈에 나는 화분에 담긴 식물과 같았다. 물을 주어야 하며 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에 모두들 익숙해진 탓에 내가 다시 실재하기 시작했어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비록 몸은 움직일 수 없었지만 마틴은 보고, 듣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희망에 차서 열심히 눈동자로 신호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희망은 이내 절망으로 바뀌었습니다. 어느새 그는 거실 한쪽의 식물 같은 존재가 되어있었습니다. 거기 있지만 아무도 거기 있는 걸 모르는 듯한 그런 존재가요.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가족은 마틴이 혼수상태에서 깨어나길 간절히 바라며 지극정성으로 돌봤습니다. 하지만 4년은 긴 시간이었습니다. 가족들은 점점 희망을 잃고 지쳐갔습니다. 급기야 그의 어머니는 절망하여 자살시도를 하고, 마틴에게 “네가 죽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며 절규했습니다.

마틴을 고통에 몰아넣는 일은 또 있었습니다. 간병인이 아무도 모르게 그를 장기간 성추행 하였지만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슬픔, 절망, 수치심, 죄책감 등 온갖 감정에 그는 괴로워 몸부림쳤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알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에게 그는 의식없이 누워있는 식물인간으로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결국 마틴은 모든 걸 포기하고 무기력해졌습니다.

  • 처음에는 절망이 왔다. 올림픽에 절망의 여신보다 빨리 달리기 같은 경기가 있다면 나는 분명 금메달을 땄을 것이다.다음으로 절망의 자매인 공포의 여신이 온다. 날마다 닥칠 뿐만 아니라, 미래의 일들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생겨난 무력감으로 인한 공포다. 마지막으로 외로움이 찾아온다. 외로움의 여신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상황에서도 천천히 삶을 앗아갈 수 있어서 셋 중에 가장 무시무시한 여신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바삐 오가고, 잡담을 하고, 말다툼을 하고, 또는 모였다가 흩어지는 동안 나는 영혼을 마비시키는 앙상한 손가락이 내 마음속으로 파고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

자신의 몸을 깨고 나오다

그러던 마틴에게 기적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새로 온 맛사지사가 마틴에게 의식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겁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맛사지사의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 무려 13년 동안 누워만 있는 마틴에게 의식이라니요? 가족은 물론 전문가인 의사조차도 마틴에게 의식이 있다는 걸 확인하지 못하는 이때, 그 사이 발전한 기술 덕택에 마틴에게 의식이 있다는 게 확인됩니다. 마침내 마틴은 움직이지 않는 자신의 몸 밖으로 그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병원 침대를 벗어나 집으로 돌아온 마틴에게 행복만 기다리고 있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오랜 시간 좌절했던 내면이 세상을 비관적으로만 보지 않도록 마음을 잘 돌봐야했습니다. 누군가 24시간 내내 옆에서 도와줄 수 있는 게 아니므로 수없이 넘어졌다 일어나며 움직이는 연습도 해야만 했습니다.

  • 아무도 듣지 않을 거라면 도대체 뭐하러 의사소통을 하냐고!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왜 사람들은 아직도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거야? 분노와 함께 지나간 온갖 일들이 밀려오는 사태를 막으려고 애써 화난 마음을 억누른다. 아무리 화가 치밀어 올라도, 표출하는 건 두렵다. 너무나 오랫동안 화를 속으로 삭이며 살아온 탓에 분노는 밖으로 드러내기가 어려운 감정이다. 일정한 음으로 말하는 컴퓨터 음성의 한계도 있거니와 다른 사람들과 멀어질까 두려워 나는 지금도 화를 잘 내지 못한다. 오랜 시간을 아웃사이더로 살아온 탓에 다시 외톨이가 될 만한 행동은 하고 싶지 않다.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게 애쓰며 일상에 적응하고 있던 그에게 또 다른 기적같은 일이 찾아옵니다. 인터넷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과 연결된 것이죠! 비록 말도 할 수 없고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지만 그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 큰 결심을 합니다. 바로 고향인 남아공을 떠나 영국으로 이주하는 것이었습니다. (현재까지도 부인과 함께 영국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2018년에 찾아온 선물 그의 2세도 함께요)

누구보다 크게 좌절했지만 거기에 함몰되지 않고 삶을 용서하고 수용하는 그의 태도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인간의 인내와 사랑의 힘을 보여준 감동 실화 주인공 마틴 피스토리우스의 실화, 도서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였습니다.

디즈니 영화 추천 맥팔랜드 USA 스포츠 감동실화

디즈니에서 볼 수 있는 교사와 학생간의 감동실화를 다룬 스포츠 감동실화 맥팔랜드 USA를 소개합니다. 맥팔랜드 USA는 캘리포니아주 맥팔랜드(McFarland)에 거주하는 가난한 라틴계 이민자 학생들의 인생을 바꾼 짐 화이트 코치에 관한 감동 실화 영화입니다.

 

한 사람의 영향력, 그 시작

  • 영화: 1987년 당시 짐 화이트는 아이다호 주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축구 코치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영화에서는 짐이 자신에 대해 뒷담화 하는 학생에게 던진 신발이 신발장에 튕겨 학생을 맞추는 사건으로 해고를 당합니다. 이 사건으로 그는 가난한 라틴계 이민자들이 모여사는 캘리포니아주의 도시, 맥팔랜드의 한 고등학교에 체육 코치로 부임하게 됩니다. 처음에 짐은 물론 그의 가족은 다시 좋은 일자리를 얻어 가난한 이 도시를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학생들의 달리기가 매우 빠르단 것을 발견합니다. 당시 학생들은 아침에는 일을 하고 뛰어서 등교를 했는데 그 달리는 모습을 짐이 본 것이었죠. 그는 학교에 크로스 컨트리 팀을 만들자고 설득합니다.
  • 현실: 짐 화이트는 야구를 했고, 맥팔랜드에는 과학 교사로 부임하였습니다. 이 작고 가난한 도시에 가게 된 것도 해고를 당해서가 아니라 작은 곳에서 영향을 끼치고 싶은 본인의 의지였습니다. 그는 1973년에 맥팔랜드에서 트랙 클럽을 시작했고 1980년에는 크로스 컨트리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87년 캘리포니아주 크로스 컨트리 선수권 대회에서 그의 팀은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1등을 차지합니다. 87년은 캘리포니아 주 선수권 대회가 처음으로 열린 해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우승은 더욱 의미가 깊었습니다

한 사람의 영향력, 그 과정

그의 크로스 컨트리 팀이 우승을 하기까지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영화에서처럼 부모들에겐 농사가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학생들은 오전에는 농사일을 하고 오후에만 연습을 할 수 있었습니다. 농번기에는 아예 연습을 못하기도 했습니다.

영화와 달리 그들이 팀 결성 첫 해, 처음 출전한 대회에서 바로 우승을 한 건 아니었습니다. 농사일로 그들은 피곤했지만 그래도 달렸고 서서히 기량을 향상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꾸준히 노력한 덕택에 1987년 캘리포니아주 크로스 컨트리 선수권 대회에서 그의 팀은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1등을 차지합니다. 87년은 캘리포니아 주 선수권 대회가 처음으로 열린 해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우승은 더욱 의미가 깊었습니다.

한 사람의 영향력, 그 결과

맥팔랜드는 대부분이 소작농인 이민자로 구성된 가난한 도시였습니다. 짐의 학생중에는 태어나서 한 번도 바다를 보지 못한 학생도 있었고, 포크가 뭔지 모르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어찌어찌 고등학교는 다니고 있지만 그들 대부분이 부모처럼 대를 이어 소작농이 될 운명이었습니다. 대학 진학은 아무도 꿈조차 꾸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짐 화이트 덕택에 그들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그들은 그들의 아버지처럼 가난한 소작농이 아니라 법관, 교사, 사업가 등 다양한 직업으로 살고 있습니다. 소작농으로 사는 것과는 비교조차 안 되게 경제적으로 풍요롭구요. 짐 화이트가 맥팔랜드로 가지 않았다면, 크로스 컨트리 팀을 만들지 않았다면 이런 감동실화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학생들이 부모의 반대와 체력의 한계를 극복하고 열심히 노력했기에 가능한 일이었구요.

한 사람의 영향력, 결론

인생에서 어느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이렇게 개천에서 용이 나기도 하고, 용이 지렁이가 되기도 합니다. 이상 디즈니에서 볼 수 있는 교사와 학생간의 감동 실화를 다룬 스포츠 영화 <맥팔랜드 USA>였습니다.

인빈서블 영화 소개: 빈스 퍼팔리 실화 럭비 영화

인빈서블 포스터

영화 인빈서블을 소개합니다. 인빈서블은 30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미식축구 프로 무대에 데뷔한 빈스 퍼팔리에게 모티브를 얻은 실화 영화 입니다. 역경을 극복하고 결국 꿈을 이룬 내용이 어딘가 뻔하게 느껴지면서도 실화라는 걸 알아서 그런가 볼때마다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영화는 2006년 개봉 당시 미국에서 두 주 동안 1위를 할만큼 흥행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미식 축구라는 소재가 낯설어서 그런지 개봉하지 않고 바로 DVD로 발매되었습니다. 그럼 먼저 이 실화 영화의 감동 포인트를 알아본 뒤 사실과 허구를 분석해보겠습니다.

시대적 배경

인빈서블은 1970년대 필라델피아를 배경으로 합니다. 원래 필라델피아는 미국에서 4번째로 큰 산업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70년대, 미국에 불황이 닥칩니다. 필라델피아도 예외는 아니어서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힘든 시기에 접어듭니다.

영화 줄거리

감동 실화의 주인공 빈스 퍼팔리. 낮에는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고 밤에는 친구가 운영하는 바에서 일해도 경제적으로 힘들기만 합니다. 친구들과 하는 미식 축구만이 이 힘든 시기를 잠시나마 잊게합니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빈스를 이해 못하고 못마땅해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학교에서 해고를 당합니다. 아내마저 “당신은 정말 무능한 구제불능이다”라는 메모를 남긴채 집을 나가버립니다.

필라델피아를 대표하는 미식축구팀 필라델피아 이글스도 몇년 간 연패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코치를 바꾸고 선수를 모집하는 공개 오디션을 개최합니다. 직장도 잃고 아내마저 잃은 빈스,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지만 주변인들의 권유로 용기를 내어 오디션에 참가합니다. 그리고 프로 선수들과 같이 훈련하게 될 기회를 얻습니다.

선수들은 그를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서로 경쟁해야 하는데다가 빈스는 자기들처럼 어렸을 때부터 쭉 운동을 해온 프로 선수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는 그냥 잠깐 왔다 떠날 사람이었습니다. 선수들의 이런 냉대에도 빈스는 묵묵히 할 일을 하며 견딥니다. 그리고 마침내 필라델피아 이글스 팀의 연패 행진을 깨고 첫 승리를 안겨줍니다. 바텐더 출신 빈스의 성공에 불황으로 좌절해 있던 필라델피아 주민은 큰 위로와 용기를 얻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본 저두요.

사실과 허구 전격 비교

  • 운동을 취미로만 했던 영화와 달리 그는 어렸을 때부터 유능한 운동선수였습니다. 고등학교/대학교에서 장대높이뛰기, (그냥) 축구를 했고, 대학교 졸업 후에는 2년 동안 미식 축구 2부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하였습니다.
  • 잠시동안 바텐더로 일한 것은 사실입니다. (2부 리그 계약 만료 후)
  • 첫번째 부인이 악담을 메모로 남긴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그 시기는 다릅니다. (영화 나오기 5년 전이니 영화에 나온 시기보다 한참 늦습니다)
  • 고등학교/대학교 때 미식 축구 선수가 아니었다가 1976년, 30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프로 선수가 된 것은 사실입니다.
  • 공개 오디션을 통해 프로 선수가 된 것은 아니고 팀 매니저가 감독에게 소개해주었습니다.
  • 영화에서처럼 같은 해에 감독과 빈스 퍼팔리가 팀에 새로 왔고, 감독의 첫 훈련에 합류한 것은 사실입니다.
  • 필라델피아 이글스가 경기에서 연패하고 있던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공개오디션은 없었습니다. 퍼팔리가 데뷔해 활약을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영화와 달리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필라델피아 이글스 팀은 결국 16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였습니다.

실화 영화 인빈서블 감동 포인트

70년대 필라델피아 사람들은 갑자기 닥친 불황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필라델피아 이글스 팀마저 연패해 사람들은 즐거운 이야기 거리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빈스 퍼팔리가 혜성처럼 등장합니다. 비록 팀은 우승하지 못했지만 그의 활약은 인상 깊었습니다. 운동선수치고 많은 나이인 30살에 갑자기 나타나 뛰어난 기량을 보여준 그를 보며 필라델피아 사람들은 감동했습니다. 마치 IMF 시절, 박세리 선수가 양말을 벗고 웅덩이에 들어가는 장면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감동한 것 처럼요.

영화적 재미를 극대화 하기위해 사실과 약간 달라진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볼때마다 실화 영화 인빈서블은 감동을 줍니다. 가족 영화로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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