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추천: 나무 위의 여자 9층 높이 나무 위에서 738일 실화

나무 위의 여자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의 실화를 소개합니다.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은 마치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처럼 홀로 대기업에 맞서 숲을 지켜낸 환경 보호 운동가입니다. 도서 <나무 위의 여자>는 제지 회사가 숲을 파괴하는 걸 막기위해 추정 수령 1000년, 높이 61m인 삼나무 위에서 1997년 12월 10일부터 1999년 12월 18일까지 738일 동안 생활한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의 이야기입니다. 평범했던 그녀가 나무 위에서 홀로 비바람과 외로움을 견디며 점점 단단해 지는 과정이 감동을 줍니다.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 Julia Butterfly Hill

어린 시절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로 더 많이 알려진 줄리아 로레인 힐은 1974년 2월에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부모는 부흥목사로 캠핑카에 살며 미국 곳곳을 떠돌며 지냈습니다. 그러다 줄리아가 10대 중반이던 무렵 미주리에 정착했습니다.

캠핑장에서 지내던 어느 날, 나비 한 마리가 줄리아의 손에 앉았습니다. 나비는 도망치지 않고 한참을 줄리아의 손에서 머물렀습니다. 이때부터 그녀의 별명은 ‘나비’가 되었고 그녀는 이 별명을 좋아했습니다.

1996년, 그녀가 22살때 자동차 핸들이 줄리아의 두개골을 관통하는 큰 교통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그녀가 다시 걷고 말할 수 있게 되는데에는 거의 1년이 걸렸습니다. 훗날 그녀는 이 시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복되면서 저는 제 삶 전체가 균형을 잃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16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그 후 웨이트리스, 레스토랑 매니저로 쉬지 않고 일하며 내 경력, 성공, 물질적인 것에 집착했습니다. 그 사고로 나는 순간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미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습니다. 비유적으로든 문자 그대로든 내 머릿속의 운전대는 내 인생의 새로운 방향으로 나를 이끌었습니다.” <나무 위의 여자 중>

줄리아는 이때부터 내면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고 이는 그녀가 삼나무 숲 파괴를 막기위해 나무 위에 올라가는 데까지 이어집니다.

나무 위의 여자

건강을 회복한 줄리아는 캘리포니아로 자동차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평균 높이 50m 이상의 거대한 나무 숲이 파괴되는 현장을 목격합니다. 그 광경에 줄리아는 강한 끌림을 느꼈습니다. 결국 집에 돌아가지 않고 그곳에 머물기로 합니다.

캘리포니아 주 홈볼티 카운티에 있는 그 삼나무 숲은 제지회사에 의해 파괴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몇 환경단체, 시민 단체가 연합해 이를 막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벌목꾼이 나무를 자르지 못하게 누군가 높이 50m 이상의 나무에 올라가 일주일 동안 생활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고 결국 줄리아가 자원해 올라가고 이 나무는 ‘루나’로 불리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일주일만 지낼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내려오면 제지 회사가 금방 나무를 베어내고, 그러면 결국 숲 전체가 파괴될 것을 알기에 그녀는 무려 738일을 루나 위에서 지내게 됩니다. 제지회사가 루나를 포함해 완충지대 내의 나무는 벌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할 때까지요.

현재

이후에도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은 에콰도르에서 숲을 파괴하며 행해지고 있는 송유관 건설에 항의하고, 개발을 위한 농장 매각에 반대하는 등 환경 보호와 영성 수련 활동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느낀점

무려 738일입니다. D-Day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냥 무작정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그 기약없는 긴 시간을 홀로 나무 위에서 시속 64km의 강한 비바람, 추위, 외로움을 비롯한 온갖 희노애락을 견딘 줄리아도, 밑에서 음식과 생필품을 챙기고 그녀가 내려보낸 대소변을 처리하며 도운 사람들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독교는 오직 하나님만이 신이라고 가르칩니다. 자연에는 영혼이 없다 말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합니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줄리아가 이런 세뇌에서 벗어나 루나와, 더 나아가 자연과 하나되는 과정을 글로 읽으며 아름답기도 하고, 자기가 믿는다는 걸 버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에 고통스럽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간절해도, 아무리 좋은 일이어도 그것을 향해 가는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음을 다시금 느낍니다. 힘들 때마다 포기했던 저 자신을 반성합니다. 아울러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봅니다.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나무 위의 여자> 책으로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상으로 나무 위의 여자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 환경 보호 현대판 다윗과 골리앗 실화 소개를 마칩니다.

책 추천: 희망이 삶이 될 때_감동실화

디즈니플러스 영화 추천: 체스의 여왕 실화 드라마

디즈니 플러스에서 볼 수 있는 감동 실화 영화 <체스의 여왕>은 9살에 학교를 중퇴하고 거리에서 옥수수를 팔던 우간다 빈민촌 출신 소녀 피오나 무테시가 우연한 기회에 체스를 접하고, 우간다 대표 선수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오늘 일을 안 하면 내일 당장 굶어죽을지도 모르는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꿈을 향해 고군분투하는 피오나와 역시나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그녀를 돕는 어른들의 모습이 감동을 줍니다.

체스 등급

체스는 본인의 점수에 따라 등급이 달라집니다. 구체적인 점수는 어느 기준을 적용했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초보에서 시작해 클래스 E, D, C, B, A 순으로 높아집니다. 클래스 다음은 마스터 등급으로, 마스터에서도 후보 마스터, 국가 마스터, 국제 마스터 등을 거칩니다. 이 모든 단계를 거쳐야만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등급은 그랜드마스터, 수석 마스터 입니다.

피오나 무테시

유년기

피오나 무테시는 1996년 우간다 수도 캄팔라의 8대 빈민가 중 하나인 카트웨(katwe)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그녀가 3살때 아버지가 에이즈로 사망했으며 그녀의 언니 역시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망하였습니다. 9살때부터 피오나는 학교를 가지 못하고 거리에서 옥수수를 팔며 생업전선에 뛰어들어야만 했습니다.

입문 계기

하루는 우연히 오빠를 따라 기독교 스포츠 선교단체를 방문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처음으로 빈민가 사람들은 쉽게 접할 수 없는 부유한 엘리트들의 스포츠, 체스를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피오나는 제대로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기량을 보여줍니다.

입문 후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피오나였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빈민가 팀이라 경기에 출전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고, 어렵게 참가한 경기에서는 무시를 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아무리 피오나가 풍족한 환경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은 선수들을 이기며 승승장구 하더라도, 연습에 매진하지 못하고 옥수수를 팔아야만 생계가 유지되는 현실, 강간의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는 카트웨에서의 삶은 변함 없었습니다.

연습은 커녕 당장 옥수수를 팔아야만 할 현실이 계속 펼쳐졌습니다. 여러번 위기가 있었지만 결국 그녀는 최고의 자리에 올라 이 어려운 현실을 벗어나겠다는 결심을 하고 끝내 우간다 국가대표가 됩니다. 우간다 체스 역사상 여성 국가대표 선수는 피오나가 최초입니다.

현재

피오나 무테시는 그랜드 마스터 등급까지 오르길 원했지만 보수적인 체스 문화의 벽은 높았습니다. 결국 그녀는 후보 마스터 등급에 머물고 있으며 현재는 공부와 동기부여 연설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느낀점

가난하면 재능이 있어도 그 재능을 발휘하기가 힘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그 재능에 매진하는 것만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장 돈을 벌여야 내일 먹을 쌀을 살 수 있는 상황에 먼 미래를 위해 당장 눈 앞의 현실을 외면하는 선택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내 재능에 매진하기 위해서는 형편도 뒷받침 되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스스로를 믿는 게 가장 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평생을 당장 굶어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자랐다면 그런 내면의 힘을 갖기 힘들겠지요. 이런 상황에서도 끝까지 자신을 믿고 결국엔 꿈을 이루고 자신은 물론 가족도 가난에서 건져낸 이야기는 그래서 더 감동이 됩니다. 나를 믿어줄 사람은 오직 나뿐입니다. 화이팅!!

이상으로 디즈니 플러스 추천 영화 체스의 여왕 소개를 마칩니다.

디즈니플러스 영화추천: 플레이밍 핫 코믹 감동 실화

넷플릭스 영화 추천 블라인드 사이드 마이클 오어 실화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실화영화 <블라인드 사이드>를 소개합니다. 이 영화는 미식축구선수 마이클 오어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2009년에 발표되었습니다. 감동적인 내용을 덕택에 영화 자체는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나 영화의 실제 모델 마이클 오어는 영화에 묘사된 본인 모습을 굉장히 싫어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영화 자체는 감동적이고 잔잔한 유머도 있어서 가족이 함께 보기에 적합합니다. 

주연배우

산드라 블록이 거의 원탑으로 영화를 멱살 잡고 끌고 갑니다. 이 영화로 그녀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골든 글로브상 영화부문 여우주연상 등을 수상하였습니다.

줄거리

17세 소년 마이클은 마약중독자인 친엄마와 분리되어 위탁가정을 전전합니다. 하지만 위탁가정에 적응하지 못하고 친구네 집이나 거리에서 생활하기 일쑤입니다. 학교도 안 다니던 그를 친구의 아버지가 고등학교에 간신히 입학시킵니다. 그의 큰 덩치와 뛰어난 운동 신경을 알아본 체육 코치 덕택에 새로운 학교에 입학하게 된 마이클, 학생들의 배구 경기가 끝나고 관람석에 누군가 버리고 간 음식을 줍는 모습을 Sean과 앤 부부가 보게 됩니다.

미국의 큰 기념일인 추수감사절 전날 밤, 마이클이 얇은 반팔 티셔츠만 입고 추위에 떨며 걷는 모습을 앤이 보게 됩니다. 앤은 마이클이 잘 곳이 없어 학교에서 자려한다는 사실을 알고 마이클을 집으로 데려옵니다.

다음 날 아침, 잠자리를 깨끗하게 정돈해놓고 사라진 마이클. 앤은 마이클을 찾아 함께 추수감사절 식사를 하고, 다른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이클을 집에서 지내게 해줍니다.

한편 마이클은 분명 재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식 축구에서 영 활약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다 마이클의 보호 본능이 평균 이상이라는 걸 알게된 앤이 “공격수를 보호하라”고 조언하자 경기력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수준까지 급격히 향상됩니다.

하지만 마이클은 학습 장애가 있었습니다. 대학에 진학하려면 학습 성적도 좋아야 하는데 그의 점수는 거기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앤은 뛰어난 가정교사를 붙여 마이클을 공부시키고 그 결과 미식 축구로 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됩니다.

마이클오어

영화와 현실

영화 주인공 마이클 오어의 선수 생활

마이클 오어는 대학 4년 내내 미식 축구 선수로 활동하며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었습니다. 2009년 NFL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볼티모어 레이븐스에 지명되어 5시즌을 활약했습니다. 이때 그의 팀은 슈퍼볼에서 우승을 하였습니다. 6년 프로 시절 동안 알려진 그의 계약금만 2천 7백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362억 입니다. 제대로 된 옷도 없이 거리를 떠돌다 몸 값 362억의 선수가 되다니. 정말 엄청난 변화입니다.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는 그의 마지막 고등학생 시절과 대학 1학년 때를 담고 있습니다.

마이클 오어의 어린 시절

그의 어린 시절은 영화와 비슷합니다. 어머니는 마약 중독자였고 아버지는 감옥을 자주 들락거렸습니다. 위탁가정과 거리를 전전하며 살았고, 친구의 아버지 덕택에 좋은 학교로 전학을 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앤 부부에게 입양이 됩니다. 성적이 안 좋았던 것도, 앤 부부가 가정교사를 붙여준 것도, 대학 입학과 관련에 조사를 받은 것도 모두 사실입니다.

영화에 대한 마이클 오어의 평

  • 마이클은 영화에 묘사된 본인 모습에 혹평을 했습니다. 영화에서 마이클은 학습 능력도 낮고 미식 축구에 대한 이해도 떨어지고 오직 모성 본능만 충실한 존재로 나오는데 실제 마이클은 성적이 안 좋았을 뿐 미식 축구는 원래 잘했습니다.

  • 이렇게 대학도 가고 미식 축구로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영화처럼 앤 부부의 도움이 컸다는 부분에는 동의했습니다.

이와 별개로 영화는 백인이 흑인을 구원했다는 백인 구원주의가 반영됐다고 혹평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현재

2023년 8월, 마이클 오어는 앤 부부가 법적으로 자신을 입양하지 않았으며, 자신을 속여 다른 서류에 서명하게 했고, 영화 로얄티도 하나도 받지 못했다고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2024년 8월 현재 소송은 진행중이며 마이클 오어는 이 소송을 통해 영화에서 바보처럼 묘사된 본인의 이미지를 바로잡고 싶어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상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미식축구선수 마이클 오어에 대한 실화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 소개를 마칩니다.

넷플릭스 영화 추천: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실화/스릴러

 

애플티비 추천 영화: 독수리 에디 영국 최초 스키점프 선수 실화

애플티비에서 볼 수 있는 영화 <독수리 에디>를 추천합니다. 독수리 에디는 영국 최초의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 마이클 에드워즈에 관한 감동 실화 영화입니다. 그는 처음 출전한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에서 어마어마한 점수 차이로 꼴등을 했습니다. 이렇게 실력이 뛰어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에디는 현재까지도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스포츠 스타 중에 한 명입니다. 마이클의 어떤 점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올림픽 참가 전

마이클 에드워즈는 1963년 12월 영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원시가 심했던 그는 두꺼운 돋보기 안경을 항상 쓰고 있어야 했습니다. 이 안경 때문에 에디는 어딘가 맹해 보이기도 하는 귀여운 이미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13살때 수학여행에서 처음으로 스키를 접한 에디는 스키에 푹 빠지게 됩니다. 이때부터 스키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스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열정을 불태웠지만 그의 실력은 선수가 되기엔 한참 모자랐습니다. 그렇다고 꿈을 포기할 수 없던 그는 스키 점프로 전향을 하게 됩니다. 왜냐면 영국엔 스키 점프 선수가 한 명도 없어서 경쟁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본격적인 선수 활동을 위해 에디는 영국을 떠나 뉴욕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곳에서 에디를 지도해주는 감독의 장비를 빌릴 수는 있었지만 여러 문제가 있었습니다. 빌린 장비여서 에디의 몸에 맞지 않아 양말을 6켤레 착용하는 건 그나마 괜찮았습니다. 안경 위에 고글을 착용하다 보니 금새 안경에 김이 하얗게 서렸습니다. 자기 몸처럼 딱 맞는 장비를 착용하고 오직 운동에만 집중하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에디는 신경쓸게 많았습니다. 게다가 거주비, 훈련비 등 뉴욕 생활에 필요한 모든 돈을 자비로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뭐 에디는 스키 점프를 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1987년 에디는 독일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대회에 참가해 55위를 차지했습니다. 메달권에서는 멀고 먼 결과였습니다. 그래도 영국에선 1위 이자 1명인 스키점프 선수였기 때문에 이 성과를 바탕으로 그는 영국을 대표해 1988년 동계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게 됩니다.

독수리 에디가 되다

1988년 캐나다 캘거리 동계올림픽에서 에디는 꼴등을 했습니다. 금메달 수상자의 점수는 229.1 입니다. 에디는 이 점수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69.2점을 기록했습니다. 아무리 꼴등이라지만 점수 차이가 너무 납니다. 이후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일명 에디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국제 대회에서 상위권에 드는 선수만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도록요. 그래서 이 올림픽이 에디가 참가한 처음이자 마지막 올림픽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포기한 건 아니었습니다. 1998년 까지 그는 계속 올림픽 참가를 시도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올림픽에서 보기 힘든 이 터무니 없는 점수에 대중은 열광했습니다. 언론은 에디의 스토리를 더 감동적으로 만들기 위해 그가 ‘고소공포증을 극복했다’는 거짓 기사를 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점수는 안 좋았지만 그는 하루에 60번 점프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고소공포증과는 관계가 없었습니다.

여기저기서 방송 요청이 쇄도했고 그는 하루 아침에 스타가 되었습니다. 에디의 인기로 사람들이 스키 점프와 올림픽에 더 관심을 갖게 된 점을 인정받아 폐막식에선 독수리처럼 날았다는 평을 받으며 공로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에디는 독수리 에디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비록 그 뒤로 다시는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영국의 복면가왕 등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습니다. 2013년에는 다이빙 프로그램인 스플래쉬 시즌1에서 우승을 하기도 했습니다. 2010년 캐나다 벤쿠버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에선 성화 봉송을 하였습니다.

에디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독수리 에디>는 2016년에 개봉하였고 그 해 영국에서 가장 큰 수입을 올린 영화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열정으로 실력을 극복한 에디의 이야기는 영국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는 영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 스타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영화 공식 영상 보기

왓챠영화추천: 하늘을 걷는 남자 실화영화

오늘 소개해 드릴 영화는 1974년, 높이 410m인 뉴욕쌍둥이 빌딩 사이를 외줄타기로 오간 필립 프티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하늘을 걷는 남자>입니다. 왓챠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필립 프티 어린 시절

필립 프티는 1949년 프랑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마술, 저글링에 소질이 있었고 16살에 처음으로 줄타기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나이 22살때 파리 노트르담 성당 사이에 불법으로 줄을 설치하고 외줄타기를 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로부터 2년 뒤에는 시드니 하버브릿지 사이를 외줄타기로 건넜습니다. 물론 이 역시 불법이었습니다.

프티가 18살때의 일입니다. 그는 진료를 받기 위해 치과 대기실에 앉아있었습니다. 비치된 잡지를 넘기던 그는 뉴욕 쌍둥이 빌딩 건축 기사를 접하게 됩니다. 왜인지 모르지만 이때부터 그의 마음속엔 쌍둥이 빌딩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겠다는 꿈이 자리잡았습니다.

도전 과정

높이 410m인 빌딩 사이를 걷는 데에는 많은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필립은 강한 바람으로 건물이 흔들리는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또한 그와 그의 동료들은 바람과 날씨가 해당 높이의 와이어에 미치는 영향, 타워 사이 42m 간격에 걸쳐 길이 61m인 강철 케이블을 설치하는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안전을 위해 그들은 무거운 장비를 옥상으로 몰래 옮겨야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는 이를 실행하기 위해 여러 차례 뉴욕을 오갔습니다.

뉴욕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아직 건설 중 이었기 때문에 그의 동료 중 한 명인 뉴욕에 거주하는 사진 작가 짐 무어는 헬리콥터를 빌려 하늘에서 건물을 찍었습니다. 나머지 동료들은 필립이 프랑스에서 연습하는 것을 도왔습니다. 독일인 마술사 프란시스 브룬의 재정적 지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필립과 그의 동료들은 보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쌍둥이 타워에 여러 번 몰래 들어갔습니다. 보안팀의 눈을 피해 움직이며 건물 구조를 분석하고 와이어 같은 장비를 고정할 장소를 찾았습니다. 여러번의 관찰과 짐이 헬리콥터에서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필립은 타워의 축소 모형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로서 필립의 꿈이 이루어지는 날이 한층 가까워졌습니다.

필립은 옥상에서 작업하는 인부들에게 더 많은 정보를 얻기위해 프랑스 건축 잡지의 기자로 위장했습니다. 인터뷰 허가를 받은 필립은 이를 구실로 더 많은 정보를 모을 수 있었습니다. 노동자들의 작업복과 그들의 장비를 주의 깊게 관찰했습니다. 또한 건물에서 일했던 사람의 신분증을 구해 자신과 동료들의 가짜 신분증을 만들고, 작업자들의 근무 시간을 파악해 관찰하여 언제 지붕에 접근할 수 있는지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늘을걷는남자

1974년 8월 6일 화요일 밤, 모두 쉬는 틈을 이용해 필립과 그의 동료들은 무사히 104층에 장비를 옮겨 숨기는 데 성공했습니다. 맞은 편 건물 옥상으로 케이블을 전달하기 위해 필립 일행은 화살에 밧줄을 연결해 쏘는 방법을 떠올렸습니다. 이 무모해 보이는 방법을 성공시키기 위해 여러 번 연습해야 했습니다. 여러번의 실패 끝에 마침내 안정적으로 화살을 맞은 편에 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준비되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7시가 되자마자 필립은 와이어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랫동안 기다렸던 그 꿈을 이뤘습니다. 맞은 편 건물까지 이동하는 데 성공한 필립은 갑자기 뒤로 돌아 다시 와이어 위를 걸었습니다. 어느 순간 필립은 아무 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고 마음에서 환희가 솟아나는 무아지경에 빠져들었습니다. 410m 높이에 설치된 그 강철 줄 위에서 그는 무려 45분 동안 걷고, 춤추고, 눕고, 묘기를 부렸습니다. 정신을 차리니 아래에 모인 군중들이 그에게 환호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무릎을 꿇어 인사했습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나타났습니다. 건물의 양쪽 지붕에서 그가 내려오도록 설득해도 소용이 없자 나중에는 헬리콥터로 쫓아내겠다고 필립을 위협했습니다. 이제 충분하다고 느낀 뒤에야 필립은 줄에서 내려왔습니다.

<하늘을 걷는 남자> 그 후 실제 이야기

모든 기소가 기각되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두 건물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한 필립의 소식은 금새 퍼져나갔습니다. 필립은 하루 아침에 스타가 되었습니다. 검사는 필립이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어린이들을 위해 무료로 외줄타기를 선보인다는 조건으로 쌍둥이 타워 무단 침입 및 불법 외줄타기에 관련된 모든 공식 기소를 기각했습니다.

트윈 타워 측의 감사표시

인기가 많아진 건 트윈 타워 측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형편없는 디자인에 건축비는 과하게 들어갔다는 비판을 받고, 임대마저 되지 않고 있었으나 이 사건 이후로 평가는 달라졌습니다. 트윈 타워 측은 필립에게 트윈 타워 전망대 평생 이용권을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외줄타기 시작 지점 근처에 있는 강철빔에 필립의 사인을 받았습니다.

영화 촬영에 참여

필립 프티는 <하늘을 걷는 남자> 촬영을 위해 주연 배우 조셉 고든 레빗에게 외줄타기를 직접 가르쳤습니다. 그는 조셉에게 재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작품

필립의 이 실화는 동화책 등 여러 책으로 발표되었습니다. 2008년에는 Man on Wire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발표되었습니다. <하늘을 걷는 남자>는 2015년에 발표되었으며 원제는 The walk입니다.

이상 왓챠영화추천 하늘을 걷는 남자 소개를 마칩니다.

넷플릭스 영화추천: 감동 실화 내 어깨 위 고양이 밥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감동 실화 내 어깨 위 고양이 밥 영화를 소개합니다. 동물은 인간에게 무한한 신뢰와 애정을 보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인간의 보살핌을 필요로 합니다. 동물을 가족으로 맞이하게 된 인간은 예전처럼 살 수 없습니다. 반려 동물을 돌보려면 부지런해져야 하고, 경제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런 변화가 힘들 것 같아도 별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 주는 무한한 사랑에 스며들었거든요.

내어깨위고양이밥

여기, 고양이를 만나 인생이 180도로 달라진 한 남자가 있습니다. 마약 중독 노숙자였던 제임스 보웬은 고양이 밥과 함께 하게 되면서 몇 년동안 못 끊던 마약을 끊었습니다. 그것도 가장 독하다는 헤로인을요. 그 덕택에 몇 년간 연락이 끊겼던 가족과도 재회하고, 책을 쓰고 노래를 발표하며 창작 활동을 활발히 하게 됩니다. 제임스 보웬과 고양이 밥에 관한 영화와 책 <내 어깨 위 고양이 밥>을 소개합니다.

<내 어깨위 고양이 밥> 영화/책 줄거리

고양이 밥을 만나기 전 제임스

제임스 보웬은 1979년 영국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의 이혼 후 엄마와 함께 호주로 이주하였으나 그곳에서 왕따를 당하는 등 학교에 적응하지 못합니다. 결국 고등학교 2학년때 자퇴를 하고 홀로 다시 영국으로 돌아옵니다.

그는 이복 누나의 집에 얹혀 살면서 밴드 활동을 합니다. 제임스의 열정과 달리 밴드는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팀은 해체되고 그는 집에서도 나와 노숙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마약에 빠지고 결국 마약 중 제일 독하다는 헤로인에 중독되고 맙니다.

이렇게 죽지 않아서 그냥 살고 있던 제임스 앞에 어느 날 노란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납니다. 고양이를 보고 제임스는 순간 감정이입을 합니다. 거리 생활로 꽤재재한 몰골에 상처까지 있는 고양이는 마치 마약 중독자인 자기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고양이를 외면할 수 없던 제임스는 전재산을 털어 고양이를 치료해줍니다.

고양이 밥을 만난 제임스

제임스는 고양이를 다시 주인에게 보내려 했지만 아무리 찾아도 주인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고양이도 그를 주인으로 생각하는 듯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제임스는 고양이를 가족으로 맞이하고 고양이에게 밥이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보통 고양이는 집 밖을 무서워 한다는데 밥은 달랐습니다. 제임스를 따라 외출하고 버스를 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임스는 24시간을 밥과 함께 있을 수 있었습니다.

제임스는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며 사람들이 주는 팁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만 인기가 좋지는 않았습니다. 신고를 당해 쫓겨나지나 않으면 다행이었습니다. 그런데 밥이 있으니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버스킹 하는 제임스 옆에 가만히 앉아있는 귀여운 밥의 모습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심지어 처음보는 사람들에게도 거리낌없이 머리를 부비거나 하이파이브를 하며 애교를 부리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밥과 제임스의 모습을 찍어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순식간에 제임스와 밥은 동네 스타가 되었습니다.

제임스를 바꾼 고양이 밥

한편 밥을 책임지게 되자 제임스는 더이상 예전처럼 살 수 없었습니다. 밥과 함께 지낼 안정적인 주거 공간이 필요했고, 밥의 사료를 사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습니다. 예전에는 규칙을 지키기 싫어 정부에서 제공해준 쉼터에서도 쫓겨나거나 제 발로 나오곤 했지만 이젠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규칙을 지키기 시작했고 돈을 더 벌기위해 노숙자 자립을 위한 잡지 빅이슈도 팔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작은 성취감이 쌓이면서 제임스의 마음에는 자신감이 조금씩 자랐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마약을 끊기로 합니다.

마약을 끊는 것은 보통 의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몇 주 동안을 고열과 근육통으로 죽을 것 같은 고통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다시 마약을 찾았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 제임스는 참을 수 있었습니다. 고통에 신음하는 제임스 곁에서 골골송을 불러주며 나름의 방식으로 위로하는 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후로 제임스의 일상이 순조롭게만 잘 풀린 건 아니었습니다. 동네 스타가 되긴 했으나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는 건 불법이었기 때문에 여전히 신고를 당했고 밥을 잃어버린 큰 사건도 있었습니다. 스트레스가 극심할 때면 다시 마약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마약을 완전히 끊는 데 성공한 것이죠! 이렇게 점점 내적으로 성장하고 생활도 안정적이 되면서 다시 가족과 재회도 합니다.

이상, 세상에서 버림받은 느낌으로 스스로를 버린 채 마약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제임스가 밥을 만난 덕택에 평범한 일상을 찾게 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내 어깨 위 고양이 밥> 소개였습니다.

제임스의 작품

밥 덕택에 마약 중독에서 탈출한 제임스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우리 나라에 <내 어깨 위 고양이, 밥>으로 번역된 <A street cat named Bob>을 비롯해 대략 10권의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2011년 출판된 <내 어깨 위 고양이 밥>은 30개국 이상에 번역되었으며 영국에서만 100만부 이상이 판매되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2016년엔 동명의 영화로도 개봉되었습니다. 영화속 고양이는 실제 밥이라고 합니다. 제임스도 영화에 까메오로 출연하였습니다. 싸인회에서 “내 이야기 같네요~”라고 말하는 이가 실제 제임스 보웬 입니다. 제임스는 밥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노래로도 만들어 발표하였습니다.

현재

2020년 11월, <내 어깨 위 고양이 밥2>가 개봉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같은 해에 밥은 교통사고로 사망하였습니다. 14~16세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비록 밥은 죽었으나 영화는 미리 찍어둔 것이어서 <내 어깨 위 고양이 밥2>에 나오는 고양이도 밥이라고 합니다.

디즈니플러스 영화추천: 히든 피겨스 실화vs영화

디즈니 플러스에서 볼 수 있는 영화로 지금보다 흑인과 여성에 대한 차별이 더 심했던 1960년대, 능력자들만 모인다는 나사(NASA)에서도 더 특출난 능력으로 흑인 여성이라는 이중 유리천장을 극복한 실제 인물 3명에 관한 감동 실화 영화 히든 피겨스를 소개합니다.

감동 실화 영화 히든 피겨스 줄거리

나사(NASA)에 근무하는 캐서린 존슨, 도로시 본, 매리 잭슨은 근무 하는 부서가 서로 다름에도 같은 동네에 사는 흑인 여성이라는 공통점으로 같이 카풀로 출근 하며 똘똘 뭉쳐 다닙니다. 이들은 흑인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회사에서 각각 다른 위기를 맞습니다. 그리고 그녀들은 그 위기를 멋지게 극복합니다.

캐서린 존슨

캐서린은 보조 계산원이었습니다. 그녀는 우주선 발사와 관련해 궤적 계산이 맞는지 검토하는 일을 합니다. 그곳에서 흑인은 캐서린 한 명 뿐입니다. 검산을 하려면 정확한 숫자가 있어야 하는데 그녀의 직속 상사는 그녀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보안을 핑계대며 부분부분 내용을 지워서 줍니다. 이런 괴롭힘 속에서도 그녀는 꿋꿋이 자기 할일을 해냅니다.

한 번은 팀원들이 풀지 못한 우주선 궤적을 보조 계산원인 캐서린이 정확하게 풀어냅니다. 이 모습을 본 팀장은 그녀를 공식 팀원으로 승진시킵니다. 팀원들은 그녀를 동료로 받아들이지 않고 캐서린에게만 “유색인종”이라고 쓰여진 더러운 커피 포트를 쓰게 하는 등 여전히 무시하고 차별합니다.

한편 캐서린은 건물내에 화장실이 없어서 무려 800m나 떨어진 다른 건물의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알게 된 팀장은 흑인 전용, 백인 전용으로 나눠져 있던 화장실을 다 통합시켜 버립니다.

이런 여러 우여곡절 속에서 캐서린은 다른 팀원들은 물론, 당시 처음으로 도입된 IBM 컴퓨터마저 풀지 못한 계산을 해내 우주선 발사를 성공시키며 능력을 인정받습니다.

도로시 본

도로시는 나사에서 흑인 여성만으로 구성된 전산부를 총 관리했습니다. 하지만 흑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급여는 다른 전산원들과 동일했습니다. 도로시는 부당하다고 느꼈지만 그래도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하루는 곧 전산원들의 업무를 컴퓨터가 하게 되고, 그러면 모두 해고당할 거라는 소문을 듣게됩니다. 도로시는 발빠르게 컴퓨터 사용법을 익혀 팀원들에게 가르칩니다.

소문대로 나사에 컴퓨터가 들어옵니다. 그런데 도로시와 그녀의 팀원들 말고는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덕택에 그녀들은 해고되지 않고 보직이 변경되면서 살아남습니다.

이 공로 덕택에 도로시는 나사 최초의 흑인 여성 부서장이자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인정받습니다.

메리 잭슨

메리는 우주선 설계 부서에서 근무합니다. 그녀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 팀장으로부터 나사 정식 엔지니어에 지원하라는 권유를 받습니다. 나사의 정식 엔지니어중에는 흑인도 여자도 없습니다. 그런데 흑인 여자인 내가 과연 뽑힐지,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닌지 갈등하다 도전해보기로 합니다.

그녀가 가진 수학과 물리 학위에 관계없이 해당 직위에는 추가 과정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그녀의 신청은 반려됩니다. 추가 과정을 수료할 수 있는 학교는 오직 백인만 입학할 수 있는 곳입니다. 메리는 학교측에 이러한 사유를 설명하며 입학 신청을 합니다. 하지만 학교에선 허가를 해주지 않았고 결국 메리는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입학 허가를 위해 재판을 신청합니다.

그리고 변호사 없이 홀로 재판에서 승리해 입학 허가를 받아냅니다.

영화와 다른 실제 이야기

실화를 기반으로 했지만 감동을 극대화 하기 위해 영화에는 실제와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먼저, 같은 동네에 사는 절친으로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며 서로 힘이 되어주었던 영화와 달리 실제로 그들은 서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일했습니다.

캐서린 존슨

ㅇ 영화에서 캐서린 존슨은 유색 인종 화장실을 찾아 800미터 떨어진 다른 건물을 이용하고 혼자 더러운 커피 포트를 써야했지만 이런 일은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ㅇ 실제로 캐서린 존슨이 근무한 빌딩에는 유색 인종 화장실이 없었습니다. 캐서린이 오기 전에는 모두 백인이어서 굳이 나눌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ㅇ 버스를 타도 백인 자리, 흑인 자리가 나뉘어져 있던 시대였지만 캐서린은 이런 분위기에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유색인종 화장실을 찾아 나서지 않고 암묵적으로는 백인 전용인 그 화장실을 그냥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훗날 인종 차별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습니다.

메리 잭슨

ㅇ 메리 잭슨은 입학 허가를 받기위해 재판을 거치지 않았습니다. 학교측은 그녀의 입학 신청을 바로 승인해주었습니다. 메리 잭슨은 이 과정 수료후 나사 최초의 흑인 여성 엔지니어가 되었습니다.

영화 뒷 이야기

ㅇ 유색 인종 화장실을 없앤 캐서린의 팀장이나 메리에게 정식 엔지니어가 될 것을 권유한 팀장 모두 백인 남자였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결국 흑인은 백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백인 우월주의를 반영했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ㅇ 나사 최초 흑인 여성 엔지니어, 나사 최초 흑인 여성 팀장, 우주선 궤적 계산 등 어지간한 백인 남성도 이루기 힘든 업적을 이뤘지만 흑인이자 여성이었기 때문에 그녀들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다 2016년 역시 흑인 여성인 마고 리 쉐틀리 작가가 집필한 동명의 논픽션 도서 <히든 피겨스>를 통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ㅇ 2021년, NASA의 워싱턴 DC 본부는 메리 잭슨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Mary W. Jackson NASA 본부로 이름을 변경하였습니다.

교훈

실제로 그녀들이 나사에서 근무하면서 영화에서와 같은 고충을 겪지는 않았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흑인과 여성, 흑인 여성에 대한 차별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평생을 그런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이들은 거기에 위축되지 않고 끝까지 공부하고, 컴퓨터가 도입되면서 일자리를 잃을 뻔한 위기를 재빨리 프로그래밍을 익혀 팀원들에게 가르치고, 그 어느 흑인도 시도하지 않았던 백인만의 학교에 입학 신청을 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개척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본인들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이렇게 감동적인 실화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우리의 도전의식을 고취시킵니다. 나도 이렇게 내 인생에 주인으로 살고 있는가? 아무 것도 안 하며 그저 환경 탓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이상으로 디즈니플러스에서 볼 수 있는 실화 영화 히든 피겨스 소개를 마칩니다.

디즈니플러스 영화 추천: 127시간_자기 팔을 자른 실화

디즈니플러스에서 볼 수 있는 실화 영화 127시간을 추천합니다. 127시간은 팔이 협곡위로 떨어진 바위틈에 껴 127시간만에 자기 팔을 자르고 탈출한 아론 랠스턴에 대한 실화 영화입니다. 살기위해 등산용 칼로 자기 팔을 자른 한 인간의 위대한 삶에 대한 의지가 감동을 주는 영화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영화 줄거리

2003년 어느 금요일 오후, 평소 등반이 취미이던 아론 랠스턴은 홀로 미국의 대표적인 캐년 중 하나인 유타주 블루존 캐년 등반에 나선다. 해방감을 느끼며 아무도 없는 광활한 협곡 사이를 자유롭게 누비던 중 갑자기 위에서 바위가 떨어진다. 미처 피하지 못하고 손이 바위와 협곡 벽에 틈에 꽉 끼어버린 아론. 움직일 수가 없다.

마치 동네 뒷산 산책하듯 가볍게 나온 운동이라 챙겨나온 물품은 물 1리터와 산악용로프, 캠코더 그리고 작은 칼 뿐. 언제 올지 모르는 구조대를 기다리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언제쯤 구조될 수 있을까?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도 없으니 오늘 당장 실종 신고가 되지도 않을테고 누군가 이곳을 지나갈 때까지 꼼짝없이 기다려야만 한다. 아까 인사를 나눈 등반인들이 나를 발견하고 신고 해주면 좋으련만 그들이 떠난 방향을 보면 그럴 가능성도 희박하다.

월요일. 아론이 출근하지 않자 회사에선 그의 엄마에게 연락을 했고 사고 3일만에 드디어 실종 신고가 됐다. 주말에 쉬고 출근한 공원 관리자 역시 아침 일찍부터 주차되어 있는 아론의 차를 보고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얼마 뒤 차의 주인이 실종 신고 된 아론인 것으로 밝혀졌고 마침내 수색이 시작됐다.

이런 상황을 알 수 없는 아론은 방전된 캠코더 배터리와 바닥난 물처럼 점점 체력이 고갈됐다. 구조를 기다리는 건지 죽음을 기다리는 건지 알 수 없이 흐르는 시간속에 자연스레 지난 날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새삼스레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 아론. 이대로 죽을수만은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한편 바위 틈에 꽉 낀 손은 피가 통하지 않으니 썩기 시작했다. 계속 두면 팔 쪽으로 점점 번져 멀쩡한 팔까지 괴사할 판이다. 괴사가 번지는 걸 막고 이곳에서 탈출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뿐이었다. 그건 바로 팔을 자르고 여기서 나가는 것. 자칫하면 많은 출혈로 죽을수도 있지만 팔을 자르지 않아도 이대로라면 어짜피 탈진해 죽을 것이다.

칼날이 무뎌 생각처럼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한 번에 잘 되면 좋을텐데 그렇게 되지 않으니 고통의 시간이 더 길어졌다. 그래도 어찌어찌 이제 마지막으로 뼈만 자르면 되는데 이 칼로는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순간 떠오른 아이디어로 팔을 꺾어 부러트렸다. 생각보다 한 번에 쉽게 되어 왜 저 무딘 칼로 이 고생을 했는지 화가 날 정도였다.

초인적인 의지로 로프를 이용해 협곡 틈에서 127시간만에 간신히 지상으로 올라온 아론. 이 블루존 캐년에서 그가 실종됐다는 소식을 알고 있던 다른 등반인에게 바로 발견되어 도움을 받는다. 그리고 또 마침 그 근처에 있던 수색 헬기에 금방 탑승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실제 뒷 이야기

  • 아론이 팔을 자르는 데에는 40분 정도가 걸렸다. 그의 잘린 손과 팔 일부는 바위 밑에서 회수됐다. 그 바위를 옮기는 데는 성인 남자 13명과 윈치, 유압 잭이 필요했다. 그의 팔은 화장되었고 재는 아론에게 주어졌다.
  • 구조 당시 그는 전체 혈액의 25%를 잃은 상태였다. 조금만 늦었으면 과다출혈로 사망했었을 거라고

목숨을 건진 이후 아이러니 하게도 아론은 한동안 분노에 사로잡혀 있었다. 결국 이렇게 팔을 자를거면 진작 할 걸 127시간, 무려 엿새동안 왜 그 고생을 한 건지 화가 났다. 팔을 자를 때도 마지막에 비틀어서 부러트리니 한 번에 쉽게 되는 걸 40분 동안이나 마그마에 팔을 담근듯한 통증을 느끼며 그 고생을 했다는 거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지나고 보니 그가 127시간을 고생하고 마침 그 타이밍에 지상으로 올라온 데에는 어떤 보이지 않는 뜻이 있는 것 같았다.

지상으로 올라온 뒤 바로, 그의 실종 소식을 알고 있던 어느 가족을 만났다. 그 가족은 역할을 나눠 그에게 먹을 것을 주며 피를 많이 흘린 그가 정신을 잃지 않도록 옆에서 계속 돌봐주었고, 동시에 그가 구조대를 빨리 만날 수 있게 달려가 신고해주었다. 그리고 또 마침 그 근처에 있던 수색 헬기에 바로 탑승해 빨리 병원으로 옮겨져 그 많은 피를 흘리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렇게 다 지나고 보니 그는 정말 최고의 타이밍에 팔을 자르고 탈출 한거였다. 그 넓은 블루존 캐년에서 그 가족이 마침 그때 그 곳을 지날 확률은? 마침 수색 헬기가 그 근처에 와있을 확률은? 이 낮고 낮은 확률이 교차하는 기적같은 그 타이밍이 아니었다면 그는 힘겹게 탈출 했어도 결국엔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그는 분노를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시간이 한참 지나야지만 그 위기가 기회가 됐다는 것, 그 불운이 행운의 마중물이 됐다는 것이 보인다. 그렇게 깨닫기 전까지 우리는 나 자신 또는 신을 원망할 뿐이다. 어쩌면 지금도 신의 완벽한 타이밍은 진행되고 있다.

아론 랠스턴의 현재

현재 아론 랠스턴은 이 경험과 깨달음을 바탕으로 동기부여 강의를 하고 있다. 그의 이야기는 127시간 이라는 제목의 영화, 책으로 나와있다.

책 추천: 하틀랜드 감동 실화

‘게을러서 가난하다’는 편견이 편견이라고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입니다. 정말로 게을러서 가난해진 것을까요? 교육을 통해 가난과 가정폭력의 대물림에서 벗어난 세라 스마시는 하틀랜드라는 자전적 에세이를 통해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더불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라는 미국에서 ‘게을러서 가난하다’는 통념과 달리 뼈 빠지게 일하고도 가난을 벗어나기 힘든 이유를 보여줍니다.

외할머니에서 엄마로 이어진 10대때 첫 출산

그녀의 엄마는 세라 스마시를 10대때 낳았습니다. 그녀의 엄마 역시 외할머니가 10대때 낳은 아이였습니다. 세라가 태어났을 때 외할머니는 고작 34살이었습니다.

외할머니는 6번 결혼했습니다. 결혼 기간이 짧았던 원인은 모두 남편의 가정 폭력이었습니다.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미국의 깡촌인 켄자스에서 가난한 여성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결혼밖에 없었습니다. 결혼을 해야만 지긋지긋한 집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 것이죠. 6번의 결혼은 6번의 탈출이었습니다. 그러는 과정동안 자식, 특히 딸에게 본인과 비슷한 삶을 물려주게 된다는 건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세라의 엄마 역시 세라의 외할머니가 그러했듯 10대 때 세라를 낳았습니다. 다만 외할머니보다 운이 좋았던 부분은 세라의 아빠는 자식들을 차에 둔 채 밤새 술집에 있긴 했어도 가족에게 폭력을 휘두르진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일정한 주소지 없이 트레일러를 전전하며 사는 극빈층과 달리 그래도 세라네 가족에겐 안정된 집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집이 있었고, 켄자스 남자치곤 가정적인 아빠 덕택에 세라는 10대때 출산,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며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외할머니나 엄마와 다르게 교육을 통해 가난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질적인 관점에서 집에 집착하다 보니 원초적 욕구가 충족되어도 사람의 마음은 다칠 수 있다는 걸 자꾸 잊게 돼. 어딘가에 속하고자 하는 욕구도 원초적 욕구에 속하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누리지 못할 때가 많지.”(본문 중)

어린 시절

캔자스는 미국에서 대표적인 깡촌입니다. 이곳에서 몇 대째 농사를 지으며 살고있는 백인들은 햇빛에 벌겋게 탄 목 때문에 “레드넥”이라고 불립니다. 열심히 일해서 레드넥이 됐는데 아니러니 하게도 레드넥에는 게을러서 가난한 백인이라는 조롱의 의미가 담겨있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제대로 교육 받지 못했고 거의 항상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깡촌 켄자스에서 놀거리라곤 음주밖에 없었기 때문이죠. 그래도 열심히 일했습니다. 집도 없이 트레일러를 전전하며 살아도 굶지는 않았기에 아무런 문제도 못 느끼며 말이죠.

한 번은 세라의 아빠가 일을 하다 크게 다쳤습니다. 이런 경우 자신의 권리에 대해 아는 사람은 산재 처리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아빠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운이 없었거니 하면서 모든 걸 홀로 감당합니다. 아빠가 일을 못하는 기간동안 수입은 없는데 오히려 치료비까지 지출되니 안 그래도 늘 돈이 부족했던 세라네 집에는 돈이 더 부족해집니다.

벗어날 수 있었던 계기

세라는 외할머니와 엄마의 삶을 보며 다짐한 게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출산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아이가 많으면 그만큼 돈도 많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임신을 했을 때부터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세라가 볼 때 여자에게 임신과 출산은 가난으로 달리는 급행열차일 뿐입니다. 외할머니와 엄마가 출산을 한 덕택에 내가 이렇게 존재하고, 그 부분엔 감사하지만 나같은 삶을 내 딸에겐 왠지 물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하루는 세라의 아빠가 일을 하다 큰 화상을 당합니다. 얼굴부터 팔까지 상체 절반이 불에 탔고 뼈가 보일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습니다. 당연히 당장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는 게 상식입니다. 그런데 아빠는 그렇게 하지 않고 종교에 의지했습니다.

쳐다보기도 힘들 정도로 너무 끔찍한 그 상처를 병원에 가지 않고 신께서 치료해주실 거라며 집에서 고통을 감내하는 아빠를 보며 세라는 ‘믿음’이 얼마나 무서운지 깨닫습니다. 신께서 치료해준다는 믿음이 병원에 가지 않게 만들고, 그저 운이 나빴다는 믿음이 산재처리를 요구하지 않게 하고, 레드넥이라고 비아냥을 당해도 나는 중산층이라는 믿음이 문제 의식을 갖지 못하게 합니다. 세라는 절대 아빠와 같은 믿음을 갖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세라의 엄마, 외할머니가 그러했듯 세라 역시 10대때 집을 떠납니다. 다른 점은 세라의 엄마, 외할머니는 남자에게 갔지만 세라는 학교에 갔다는 점입니다.

“캔자스의 흙바닥에 살고 주방 조리대 위엔 버터 대신 크리스코 쇼트닝 큰 통이 있고 1달러짜리 환불 쿠폰을 꼬박꼬박 모아 발송하면서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부른다는 건 안빈낙도의 정신 승리이자 동시에 경제 구조에 대한 서글픈 무지의 소산이었어.” (본문 중)

하틀랜드를 쓴 세라 스마시의 현재

세라 스마시는 스마시 가문에서 처음으로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대학을 다니며 세라는 자신의 가족 더 나아가 열심히 노동하는 켄자스 주민 대부분이 가난한 이유가 세라의 아빠처럼 그저 운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몇 대를 이어진 가난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가령 미국 빈곤층은 은행에서 정부 지원금을 인출할때마다 수수료를 내야 하는데 인출 한도가 겨우 25달러라 수수료를 몇 번이나 내야합니다. 이런 식으로 사회는 가난한 사람의 얼마 안 되는 돈까지 악착같이 가져갑니다.

그런데 몇 대에 걸쳐 가난이 유전된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지 못합니다. 그저 순응할 뿐입니다. 일하다 다쳐도 산재 처리를 요구하지 못하고 그 손해마저 감당하며 더 가난해져도 그저 운이 없어서 그런 줄로만 압니다. 왜냐면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교육을 통해서만 무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가난은 교육받을 기회마저 박탈합니다.

세라 스마시는 하틀랜드를 통해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 가난이 대물림 될 수밖에 없는 개인적, 사회적 이유를 읽기 쉽게 풀어내었습니다. 이 책은 2019년 Kansas Notable Book Award를 수상하였습니다.

현재 세라 스마시는 언론인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책추천: 사막의 꽃 와리스 디리 영화 데저트플라워

와리스 디리의 실화를 다룬 사막의 꽃 도서와 이 책을 영화로 만든 데저트플라워를 소개합니다. 와리스 디리는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무려 4000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악습인 여성 할례를 세상에 처음으로 알린 인물입니다. 이 덕택에 2003년 UN에서는 세계 여성 할례 금지의 날을 지정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세상에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 악습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몰래 행해진다 합니다. 만약 와리스 디리가 이를 공론화 하지 않았다면 아프리카에선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더 희생되어야 했을까요. 여성으로서 많은 사람에게 드러내기 힘든 이야기를 용감하게 고백해 여성 할례를 아프리카 밖으로 꺼낸 와리스 디리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도서 사막의 꽃과 동명의 영화 데저트 플라워를 소개합니다.

어린 시절

와리스 디리는 1965년 소말리아 어느 유목민 부족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부족에겐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여성 할례를 하는 악습이 남아있었습니다. 여성 할례(FGM)는 여성의 순결을 지키고 성욕을 억제시킨다는 목적으로 5~6세의 여자 아이들의 성기 일부를 잘라내고 봉합하는 행위입니다. 무려 4000년 동안이나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 악습은 부족이 모여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움막에서 돌이나 오래된 칼 등으로 위험하고 비위생적으로 행해집니다. 마취도 안 된 상태에서 몸에 끔찍한 상처를 입은 아이는 보살핌을 받기는 커녕 한동안 그곳에 홀로 방치됩니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그곳에서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운 좋게 살아남은 아이는 계속 삶을 이어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아이는 고통속에 외롭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와리스 디리는 다행히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13살이 되던 해 또 위기를 맞이합니다. 60살 남자의 네번째 부인이 될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죠. 그녀는 이 결혼이 죽기보다 싫었습니다. 그래서 죽을 각오로 사하라 사막으로 도망칩니다. 그곳은 유목민 조차 위험해서 가지 않는 곳이었으나 그녀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습니다. 삶에 대한 강력한 의지로 더위와 갈증으로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겨가며 마침내 그녀는 먼 친척이 가정부로 일하고 있던 영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삶과 과거의 흔적

언어도 문화도 전혀 다른 이곳에서 와리스 디리는 새 삶을 시작합니다. 하루는 맥도날드에서 일을 하던 중 사진작가 테렌스 도노번(Terence Donovan)에게 명함을 받습니다. 처음에는 사기꾼인 줄 알고 신경도 안 썼습니다. 그러다 그가 유명 작가라는 걸 알던 룸메이트의 적극적인 권유로 그를 찾아가고 모델로 데뷔하는 행운을 잡게 됩니다.

모델 커리어는 순탄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말못할 고충이 있었습니다. 바로 비자 때문에 해야했던 위장 결혼 생활과 어렸을 때 받은 여성 할례 후유증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위장 결혼 생활은 정해진 기간을 유지한 뒤 벗어날 수 있었으나 후유증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성기가 봉합된 상태라 소변을 보는데 30~40분씩 걸리고 생리를 하는 건 더 큰 고역이었습니다.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친구들과의 대화로 그녀는 여성 할례가 아프리카만의 악습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습니다.

당장이라도 수술을 하면 후유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그게 참 어려웠습니다. 불편하기만 한 이 흔적이 결혼전까지 소중하게 지켜야 하는 전통이라고 어렸을 때 워낙 세뇌가 된 탓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마침내 용기를 내어 병원에 찾아갑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녀와 같은 나라 출신의 남자가 통역을 하러 들어옵니다. 그는 의사의 말을 그대로 통역하는 대신 그녀를 비난하고 악담을 퍼붓습니다. 결국 그녀는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야 맙니다. 그의 악담이 그녀의 두려움을 다시 자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목숨 걸고 사하라 사막을 걸어서 건넌 그녀에게도 깊게 세뇌된 믿음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건 이토록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계속 된 친구들의 격려 덕택에 다시 용기를 냈고, 결국엔 그 악습의 흔적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여성 할례를 알리다

어느새 톱모델의 위치에 오른 와리스 디리는 1997년 마리끌레르 잡지 인터뷰에서 자신이 여성 할례 피해자임을 최초로 고백합니다. 이를 통해 아프리카에서만 행해지던 여성 할례가 전 세계에 처음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이때부터 2003년까지 그녀는 UN의 홍보 대사로 활동하며 이 악습을 뿌리뽑는 데 일조합니다.

현재

1998년 와리스 디리는 첫번째 책 《사막의 꽃》(Desert Flower)을 발표했습니다. 이 책은 국제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동명의 영화(Desert Flower)로도 제작되었습니다. 그 뒤 《사막의 새벽》(Desert Dawn, 2004년), 《사막의 어린이》(Desert Children, 2005년), 《엄마에게 쓰는 편지》(Letter to My Mother, 2007년) 등 여러 편의 자서전을 발표하며 FGM 여성 성기 절제 근절을 위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2007년에는 프랑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으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슈발리에 훈장(Légion d’Honneur Chevalier)을 받았고 2019년에는 선학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이상으로 와리스 디리에 관한 실화를 다룬 책 사막의 꽃, 영화 데저트 플라워 소개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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