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 영화추천: 조이 실화 바탕 코미디 제니퍼로렌스, 브래들리쿠퍼

웨이브에서 볼 수 있는 제니퍼 로렌스가 주연을 맡은 실화 영화 <조이>를 소개합니다. 영화 <조이>는 이혼 후 웨이트리스로 일하다 억만장자가 된 조이 망가노라는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그럼 평범했던 그녀가 어떻게 억만장자가 될 수 있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영화적 감동을 극대화 하기 위해 추가된 허구적인 부분은 마지막에 나옵니다.

조이 망가노 실제 이야기

이혼 전

조이 망가노는 1956년 태어나 뉴욕에서 자랐습니다. 10대 시절 동물병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벼룩 방지를 위한 목걸이를 처음 발명하였습니다. 비슷한 디자인의 제품이 다음 해에 다른 곳에서 정식으로 출시되어 그녀의 제품은 상용화 되지는 못했습니다.

1978년 페이스 대학교에서 경영학 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에 결혼을 하였습니다.

이혼 후

1989년 이혼 후 그녀는 목장에 있는 침실 두 개짜리 집에서 세 자녀와 함께 살았습니다. 웨이트리스, 항공사 예약관리자 일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다 1990년, 34세때 손대지 않고 걸레를 짤 수 있는 <미라클 몹>을 처음 개발합니다.

1991년 친구와 가족에게 투자를 받아 아버지의 정비소에서 시제품 1000개를 생산했습니다. 무역박람회, 지역 상점에서 그녀의 걸레는 불티나게 팔려나갔습니다. 홈쇼핑에 등장한 미라클 몹의 처음 판매 실적은 부진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직접 방송에 등장해 제품에 대해 설명하자 30분 만에 18,000개의 주문이 쏟아졌습니다. 이후 10년 동안 미라클 몹은 연간 천만 달라 이상 판매되었습니다.

그녀의 발명품

영화에서처럼 그녀에게 변화의 물꼬를 터준 게 미라클 몹인 건 맞지만, 실제 그녀에게 더 큰 대박을 안겨준 건 벨벳을 덧댄 미끄럼 방지 옷걸이입니다. 이외에도 그녀는 여러 생활 용품을 발명하였습니다.

  • Forever Fragrant – 스틱, 심지 없는 양초, 향 스탠드, 끝 장식, 구체, 서랍 라이너 및 신발 셰이퍼를 포함한 가정 냄새 중화제 라인입니다. 조이는 2010년 1월 31일 하루 만에 18만 대를 팔아 HSN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 옷에 모든 것을 갖춘 수하물 시스템 – 패딩 처리된 노트북 수납 공간, 세면도구 정리함, 비행기 티켓 포켓, 탈착식 칸막이 등의 정리 기능을 갖춘 바퀴 달린 수하물입니다. 작은 더플백부터 탈부착 가능한 서랍이 있는 22인치(56cm) 휴대용 서랍장, 서류가방, 애완동물 캐리어까지 다양합니다.

  • 퍼포먼스 플랫폼(Performance Platforms) – 착용자에게 키를 더 높여주는 고무 플랫폼 힐이 있는 신발입니다. 2010년 5월 MANGANO는 HSN에서 3시간 만에 30,000켤레를 판매했습니다.

  • Comfort & Joy Textiles – 수피마 면과 다운 대체품으로 제작된 침구로, 양면 지퍼가 달린 이불 커버와 제거 및 청소를 위해 침대 스커트에 부착된 시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Shades Readers – 집과 사무실 주변에 보관하여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3개 이상의 세트로 판매되는 독서용 안경 라인입니다.조이는 1,300만 쌍 이상을 판매했습니다. (출처: 조이 망가노 위키피디아)

영화적 장치

그녀가 이혼녀의 신분으로 웨이터리스, 항공사 예약접수원 등 여러 일을 하며 어렵게 세 아이를 키운 것은 사실입니다. 영화에는 그녀의 어려운 상황, 그리고 이를 극복한 그녀의 정신력을 더 부각시키기 위해 허구의 인물이 추가되었습니다.

엄마와 이복 여동생

매일 TV만 보는 무기력한 엄마, 조이를 질투하며 사사건건 방해하는 이복 여동생은 허구 인물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런 걸 왜 하냐, 하나마나 안 된다”고 주위에서 말렸다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영화속 엄마와 이복 여동생은 그녀의 도전을 방해하는 외부의 목소리이자 또한 그녀 내면의 목소리를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이루려면 이런 목소리의 방해에도 멈추지 말고 계속 나아가야 합니다.

학위, 자녀의 수, 남편

영화에선 부모의 이혼으로 그녀가 대학을 중퇴하고 가장이 된 것으로 나오지만 이는 사실과 전혀 다릅니다. 자녀 역시 두 명이 아니라 세 명이었으며 이혼 후 그녀의 남편까지 부양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아직까지도 전남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합니다.

할머니와 아빠의 새 여친

영화에서 조이에게 위로와 용기를 준 유일한 인물 할머니는 사실과 같다고 합니다. 조이에게 거액을 투자한 아빠의 새 여친은 허구의 인물이지만 조이가 주변인들에게 투자를 받은 건 사실입니다.

친구의 전화

조이가 홈쇼핑에 등장했을 때 친구가 전화를 하는 장면은 사실에서 따온 것입니다.

느낀점

한정된 시간동안 감동을 극대화 하려다보니 영화에는 사실과 다른 부분들이 나오긴 하지만 이 부분이 영화에 몰입하는 걸 방해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감동을 극대화 하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아무리 미국이어도 1970~80년대에 34살의 이혼녀가 발명을 하고 사업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주위 사람이 말리지 않아도 ‘이 나이에, 이 처지에 내가 할 수 있겠어?’ 하고 스스로 포기할 수도 있었을텐데 이 모든 걸 극복하고 과감하게 도전한 그녀의 용기에 강한 동기부여가 됩니다. 자신을 믿고 싶으신 분들께 영화 <조이> 추천합니다. 웨이브, 애플티비 등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애플티비 추천 영화: 독수리 에디 영국 최초 스키점프 선수 실화

애플티비 추천 영화: 독수리 에디 영국 최초 스키점프 선수 실화

애플티비에서 볼 수 있는 영화 <독수리 에디>를 추천합니다. 독수리 에디는 영국 최초의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 마이클 에드워즈에 관한 감동 실화 영화입니다. 그는 처음 출전한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에서 어마어마한 점수 차이로 꼴등을 했습니다. 이렇게 실력이 뛰어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에디는 현재까지도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스포츠 스타 중에 한 명입니다. 마이클의 어떤 점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올림픽 참가 전

마이클 에드워즈는 1963년 12월 영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원시가 심했던 그는 두꺼운 돋보기 안경을 항상 쓰고 있어야 했습니다. 이 안경 때문에 에디는 어딘가 맹해 보이기도 하는 귀여운 이미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13살때 수학여행에서 처음으로 스키를 접한 에디는 스키에 푹 빠지게 됩니다. 이때부터 스키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스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열정을 불태웠지만 그의 실력은 선수가 되기엔 한참 모자랐습니다. 그렇다고 꿈을 포기할 수 없던 그는 스키 점프로 전향을 하게 됩니다. 왜냐면 영국엔 스키 점프 선수가 한 명도 없어서 경쟁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본격적인 선수 활동을 위해 에디는 영국을 떠나 뉴욕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곳에서 에디를 지도해주는 감독의 장비를 빌릴 수는 있었지만 여러 문제가 있었습니다. 빌린 장비여서 에디의 몸에 맞지 않아 양말을 6켤레 착용하는 건 그나마 괜찮았습니다. 안경 위에 고글을 착용하다 보니 금새 안경에 김이 하얗게 서렸습니다. 자기 몸처럼 딱 맞는 장비를 착용하고 오직 운동에만 집중하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에디는 신경쓸게 많았습니다. 게다가 거주비, 훈련비 등 뉴욕 생활에 필요한 모든 돈을 자비로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뭐 에디는 스키 점프를 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1987년 에디는 독일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대회에 참가해 55위를 차지했습니다. 메달권에서는 멀고 먼 결과였습니다. 그래도 영국에선 1위 이자 1명인 스키점프 선수였기 때문에 이 성과를 바탕으로 그는 영국을 대표해 1988년 동계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게 됩니다.

독수리 에디가 되다

1988년 캐나다 캘거리 동계올림픽에서 에디는 꼴등을 했습니다. 금메달 수상자의 점수는 229.1 입니다. 에디는 이 점수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69.2점을 기록했습니다. 아무리 꼴등이라지만 점수 차이가 너무 납니다. 이후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일명 에디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국제 대회에서 상위권에 드는 선수만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도록요. 그래서 이 올림픽이 에디가 참가한 처음이자 마지막 올림픽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포기한 건 아니었습니다. 1998년 까지 그는 계속 올림픽 참가를 시도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올림픽에서 보기 힘든 이 터무니 없는 점수에 대중은 열광했습니다. 언론은 에디의 스토리를 더 감동적으로 만들기 위해 그가 ‘고소공포증을 극복했다’는 거짓 기사를 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점수는 안 좋았지만 그는 하루에 60번 점프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고소공포증과는 관계가 없었습니다.

여기저기서 방송 요청이 쇄도했고 그는 하루 아침에 스타가 되었습니다. 에디의 인기로 사람들이 스키 점프와 올림픽에 더 관심을 갖게 된 점을 인정받아 폐막식에선 독수리처럼 날았다는 평을 받으며 공로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에디는 독수리 에디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비록 그 뒤로 다시는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영국의 복면가왕 등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습니다. 2013년에는 다이빙 프로그램인 스플래쉬 시즌1에서 우승을 하기도 했습니다. 2010년 캐나다 벤쿠버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에선 성화 봉송을 하였습니다.

에디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독수리 에디>는 2016년에 개봉하였고 그 해 영국에서 가장 큰 수입을 올린 영화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열정으로 실력을 극복한 에디의 이야기는 영국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는 영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 스타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영화 공식 영상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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