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추천: 나무 위의 여자 9층 높이 나무 위에서 738일 실화

나무 위의 여자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의 실화를 소개합니다.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은 마치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처럼 홀로 대기업에 맞서 숲을 지켜낸 환경 보호 운동가입니다. 도서 <나무 위의 여자>는 제지 회사가 숲을 파괴하는 걸 막기위해 추정 수령 1000년, 높이 61m인 삼나무 위에서 1997년 12월 10일부터 1999년 12월 18일까지 738일 동안 생활한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의 이야기입니다. 평범했던 그녀가 나무 위에서 홀로 비바람과 외로움을 견디며 점점 단단해 지는 과정이 감동을 줍니다.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 Julia Butterfly Hill

어린 시절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로 더 많이 알려진 줄리아 로레인 힐은 1974년 2월에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부모는 부흥목사로 캠핑카에 살며 미국 곳곳을 떠돌며 지냈습니다. 그러다 줄리아가 10대 중반이던 무렵 미주리에 정착했습니다.

캠핑장에서 지내던 어느 날, 나비 한 마리가 줄리아의 손에 앉았습니다. 나비는 도망치지 않고 한참을 줄리아의 손에서 머물렀습니다. 이때부터 그녀의 별명은 ‘나비’가 되었고 그녀는 이 별명을 좋아했습니다.

1996년, 그녀가 22살때 자동차 핸들이 줄리아의 두개골을 관통하는 큰 교통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그녀가 다시 걷고 말할 수 있게 되는데에는 거의 1년이 걸렸습니다. 훗날 그녀는 이 시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복되면서 저는 제 삶 전체가 균형을 잃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16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그 후 웨이트리스, 레스토랑 매니저로 쉬지 않고 일하며 내 경력, 성공, 물질적인 것에 집착했습니다. 그 사고로 나는 순간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미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습니다. 비유적으로든 문자 그대로든 내 머릿속의 운전대는 내 인생의 새로운 방향으로 나를 이끌었습니다.” <나무 위의 여자 중>

줄리아는 이때부터 내면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고 이는 그녀가 삼나무 숲 파괴를 막기위해 나무 위에 올라가는 데까지 이어집니다.

나무 위의 여자

건강을 회복한 줄리아는 캘리포니아로 자동차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평균 높이 50m 이상의 거대한 나무 숲이 파괴되는 현장을 목격합니다. 그 광경에 줄리아는 강한 끌림을 느꼈습니다. 결국 집에 돌아가지 않고 그곳에 머물기로 합니다.

캘리포니아 주 홈볼티 카운티에 있는 그 삼나무 숲은 제지회사에 의해 파괴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몇 환경단체, 시민 단체가 연합해 이를 막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벌목꾼이 나무를 자르지 못하게 누군가 높이 50m 이상의 나무에 올라가 일주일 동안 생활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고 결국 줄리아가 자원해 올라가고 이 나무는 ‘루나’로 불리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일주일만 지낼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내려오면 제지 회사가 금방 나무를 베어내고, 그러면 결국 숲 전체가 파괴될 것을 알기에 그녀는 무려 738일을 루나 위에서 지내게 됩니다. 제지회사가 루나를 포함해 완충지대 내의 나무는 벌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할 때까지요.

현재

이후에도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은 에콰도르에서 숲을 파괴하며 행해지고 있는 송유관 건설에 항의하고, 개발을 위한 농장 매각에 반대하는 등 환경 보호와 영성 수련 활동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느낀점

무려 738일입니다. D-Day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냥 무작정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그 기약없는 긴 시간을 홀로 나무 위에서 시속 64km의 강한 비바람, 추위, 외로움을 비롯한 온갖 희노애락을 견딘 줄리아도, 밑에서 음식과 생필품을 챙기고 그녀가 내려보낸 대소변을 처리하며 도운 사람들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독교는 오직 하나님만이 신이라고 가르칩니다. 자연에는 영혼이 없다 말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합니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줄리아가 이런 세뇌에서 벗어나 루나와, 더 나아가 자연과 하나되는 과정을 글로 읽으며 아름답기도 하고, 자기가 믿는다는 걸 버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에 고통스럽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간절해도, 아무리 좋은 일이어도 그것을 향해 가는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음을 다시금 느낍니다. 힘들 때마다 포기했던 저 자신을 반성합니다. 아울러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봅니다.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나무 위의 여자> 책으로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상으로 나무 위의 여자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 환경 보호 현대판 다윗과 골리앗 실화 소개를 마칩니다.

책 추천: 희망이 삶이 될 때_감동실화

책 추천: 하틀랜드 감동 실화

‘게을러서 가난하다’는 편견이 편견이라고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입니다. 정말로 게을러서 가난해진 것을까요? 교육을 통해 가난과 가정폭력의 대물림에서 벗어난 세라 스마시는 하틀랜드라는 자전적 에세이를 통해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더불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라는 미국에서 ‘게을러서 가난하다’는 통념과 달리 뼈 빠지게 일하고도 가난을 벗어나기 힘든 이유를 보여줍니다.

외할머니에서 엄마로 이어진 10대때 첫 출산

그녀의 엄마는 세라 스마시를 10대때 낳았습니다. 그녀의 엄마 역시 외할머니가 10대때 낳은 아이였습니다. 세라가 태어났을 때 외할머니는 고작 34살이었습니다.

외할머니는 6번 결혼했습니다. 결혼 기간이 짧았던 원인은 모두 남편의 가정 폭력이었습니다.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미국의 깡촌인 켄자스에서 가난한 여성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결혼밖에 없었습니다. 결혼을 해야만 지긋지긋한 집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 것이죠. 6번의 결혼은 6번의 탈출이었습니다. 그러는 과정동안 자식, 특히 딸에게 본인과 비슷한 삶을 물려주게 된다는 건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세라의 엄마 역시 세라의 외할머니가 그러했듯 10대 때 세라를 낳았습니다. 다만 외할머니보다 운이 좋았던 부분은 세라의 아빠는 자식들을 차에 둔 채 밤새 술집에 있긴 했어도 가족에게 폭력을 휘두르진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일정한 주소지 없이 트레일러를 전전하며 사는 극빈층과 달리 그래도 세라네 가족에겐 안정된 집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집이 있었고, 켄자스 남자치곤 가정적인 아빠 덕택에 세라는 10대때 출산,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며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외할머니나 엄마와 다르게 교육을 통해 가난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질적인 관점에서 집에 집착하다 보니 원초적 욕구가 충족되어도 사람의 마음은 다칠 수 있다는 걸 자꾸 잊게 돼. 어딘가에 속하고자 하는 욕구도 원초적 욕구에 속하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누리지 못할 때가 많지.”(본문 중)

어린 시절

캔자스는 미국에서 대표적인 깡촌입니다. 이곳에서 몇 대째 농사를 지으며 살고있는 백인들은 햇빛에 벌겋게 탄 목 때문에 “레드넥”이라고 불립니다. 열심히 일해서 레드넥이 됐는데 아니러니 하게도 레드넥에는 게을러서 가난한 백인이라는 조롱의 의미가 담겨있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제대로 교육 받지 못했고 거의 항상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깡촌 켄자스에서 놀거리라곤 음주밖에 없었기 때문이죠. 그래도 열심히 일했습니다. 집도 없이 트레일러를 전전하며 살아도 굶지는 않았기에 아무런 문제도 못 느끼며 말이죠.

한 번은 세라의 아빠가 일을 하다 크게 다쳤습니다. 이런 경우 자신의 권리에 대해 아는 사람은 산재 처리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아빠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운이 없었거니 하면서 모든 걸 홀로 감당합니다. 아빠가 일을 못하는 기간동안 수입은 없는데 오히려 치료비까지 지출되니 안 그래도 늘 돈이 부족했던 세라네 집에는 돈이 더 부족해집니다.

벗어날 수 있었던 계기

세라는 외할머니와 엄마의 삶을 보며 다짐한 게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출산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아이가 많으면 그만큼 돈도 많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임신을 했을 때부터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세라가 볼 때 여자에게 임신과 출산은 가난으로 달리는 급행열차일 뿐입니다. 외할머니와 엄마가 출산을 한 덕택에 내가 이렇게 존재하고, 그 부분엔 감사하지만 나같은 삶을 내 딸에겐 왠지 물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하루는 세라의 아빠가 일을 하다 큰 화상을 당합니다. 얼굴부터 팔까지 상체 절반이 불에 탔고 뼈가 보일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습니다. 당연히 당장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는 게 상식입니다. 그런데 아빠는 그렇게 하지 않고 종교에 의지했습니다.

쳐다보기도 힘들 정도로 너무 끔찍한 그 상처를 병원에 가지 않고 신께서 치료해주실 거라며 집에서 고통을 감내하는 아빠를 보며 세라는 ‘믿음’이 얼마나 무서운지 깨닫습니다. 신께서 치료해준다는 믿음이 병원에 가지 않게 만들고, 그저 운이 나빴다는 믿음이 산재처리를 요구하지 않게 하고, 레드넥이라고 비아냥을 당해도 나는 중산층이라는 믿음이 문제 의식을 갖지 못하게 합니다. 세라는 절대 아빠와 같은 믿음을 갖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세라의 엄마, 외할머니가 그러했듯 세라 역시 10대때 집을 떠납니다. 다른 점은 세라의 엄마, 외할머니는 남자에게 갔지만 세라는 학교에 갔다는 점입니다.

“캔자스의 흙바닥에 살고 주방 조리대 위엔 버터 대신 크리스코 쇼트닝 큰 통이 있고 1달러짜리 환불 쿠폰을 꼬박꼬박 모아 발송하면서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부른다는 건 안빈낙도의 정신 승리이자 동시에 경제 구조에 대한 서글픈 무지의 소산이었어.” (본문 중)

하틀랜드를 쓴 세라 스마시의 현재

세라 스마시는 스마시 가문에서 처음으로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대학을 다니며 세라는 자신의 가족 더 나아가 열심히 노동하는 켄자스 주민 대부분이 가난한 이유가 세라의 아빠처럼 그저 운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몇 대를 이어진 가난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가령 미국 빈곤층은 은행에서 정부 지원금을 인출할때마다 수수료를 내야 하는데 인출 한도가 겨우 25달러라 수수료를 몇 번이나 내야합니다. 이런 식으로 사회는 가난한 사람의 얼마 안 되는 돈까지 악착같이 가져갑니다.

그런데 몇 대에 걸쳐 가난이 유전된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지 못합니다. 그저 순응할 뿐입니다. 일하다 다쳐도 산재 처리를 요구하지 못하고 그 손해마저 감당하며 더 가난해져도 그저 운이 없어서 그런 줄로만 압니다. 왜냐면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교육을 통해서만 무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가난은 교육받을 기회마저 박탈합니다.

세라 스마시는 하틀랜드를 통해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 가난이 대물림 될 수밖에 없는 개인적, 사회적 이유를 읽기 쉽게 풀어내었습니다. 이 책은 2019년 Kansas Notable Book Award를 수상하였습니다.

현재 세라 스마시는 언론인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책추천: 사막의 꽃 와리스 디리 영화 데저트플라워

와리스 디리의 실화를 다룬 사막의 꽃 도서와 이 책을 영화로 만든 데저트플라워를 소개합니다. 와리스 디리는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무려 4000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악습인 여성 할례를 세상에 처음으로 알린 인물입니다. 이 덕택에 2003년 UN에서는 세계 여성 할례 금지의 날을 지정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세상에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 악습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몰래 행해진다 합니다. 만약 와리스 디리가 이를 공론화 하지 않았다면 아프리카에선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더 희생되어야 했을까요. 여성으로서 많은 사람에게 드러내기 힘든 이야기를 용감하게 고백해 여성 할례를 아프리카 밖으로 꺼낸 와리스 디리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도서 사막의 꽃과 동명의 영화 데저트 플라워를 소개합니다.

어린 시절

와리스 디리는 1965년 소말리아 어느 유목민 부족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부족에겐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여성 할례를 하는 악습이 남아있었습니다. 여성 할례(FGM)는 여성의 순결을 지키고 성욕을 억제시킨다는 목적으로 5~6세의 여자 아이들의 성기 일부를 잘라내고 봉합하는 행위입니다. 무려 4000년 동안이나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 악습은 부족이 모여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움막에서 돌이나 오래된 칼 등으로 위험하고 비위생적으로 행해집니다. 마취도 안 된 상태에서 몸에 끔찍한 상처를 입은 아이는 보살핌을 받기는 커녕 한동안 그곳에 홀로 방치됩니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그곳에서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운 좋게 살아남은 아이는 계속 삶을 이어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아이는 고통속에 외롭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와리스 디리는 다행히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13살이 되던 해 또 위기를 맞이합니다. 60살 남자의 네번째 부인이 될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죠. 그녀는 이 결혼이 죽기보다 싫었습니다. 그래서 죽을 각오로 사하라 사막으로 도망칩니다. 그곳은 유목민 조차 위험해서 가지 않는 곳이었으나 그녀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습니다. 삶에 대한 강력한 의지로 더위와 갈증으로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겨가며 마침내 그녀는 먼 친척이 가정부로 일하고 있던 영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삶과 과거의 흔적

언어도 문화도 전혀 다른 이곳에서 와리스 디리는 새 삶을 시작합니다. 하루는 맥도날드에서 일을 하던 중 사진작가 테렌스 도노번(Terence Donovan)에게 명함을 받습니다. 처음에는 사기꾼인 줄 알고 신경도 안 썼습니다. 그러다 그가 유명 작가라는 걸 알던 룸메이트의 적극적인 권유로 그를 찾아가고 모델로 데뷔하는 행운을 잡게 됩니다.

모델 커리어는 순탄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말못할 고충이 있었습니다. 바로 비자 때문에 해야했던 위장 결혼 생활과 어렸을 때 받은 여성 할례 후유증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위장 결혼 생활은 정해진 기간을 유지한 뒤 벗어날 수 있었으나 후유증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성기가 봉합된 상태라 소변을 보는데 30~40분씩 걸리고 생리를 하는 건 더 큰 고역이었습니다.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친구들과의 대화로 그녀는 여성 할례가 아프리카만의 악습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습니다.

당장이라도 수술을 하면 후유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그게 참 어려웠습니다. 불편하기만 한 이 흔적이 결혼전까지 소중하게 지켜야 하는 전통이라고 어렸을 때 워낙 세뇌가 된 탓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마침내 용기를 내어 병원에 찾아갑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녀와 같은 나라 출신의 남자가 통역을 하러 들어옵니다. 그는 의사의 말을 그대로 통역하는 대신 그녀를 비난하고 악담을 퍼붓습니다. 결국 그녀는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야 맙니다. 그의 악담이 그녀의 두려움을 다시 자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목숨 걸고 사하라 사막을 걸어서 건넌 그녀에게도 깊게 세뇌된 믿음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건 이토록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계속 된 친구들의 격려 덕택에 다시 용기를 냈고, 결국엔 그 악습의 흔적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여성 할례를 알리다

어느새 톱모델의 위치에 오른 와리스 디리는 1997년 마리끌레르 잡지 인터뷰에서 자신이 여성 할례 피해자임을 최초로 고백합니다. 이를 통해 아프리카에서만 행해지던 여성 할례가 전 세계에 처음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이때부터 2003년까지 그녀는 UN의 홍보 대사로 활동하며 이 악습을 뿌리뽑는 데 일조합니다.

현재

1998년 와리스 디리는 첫번째 책 《사막의 꽃》(Desert Flower)을 발표했습니다. 이 책은 국제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동명의 영화(Desert Flower)로도 제작되었습니다. 그 뒤 《사막의 새벽》(Desert Dawn, 2004년), 《사막의 어린이》(Desert Children, 2005년), 《엄마에게 쓰는 편지》(Letter to My Mother, 2007년) 등 여러 편의 자서전을 발표하며 FGM 여성 성기 절제 근절을 위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2007년에는 프랑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으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슈발리에 훈장(Légion d’Honneur Chevalier)을 받았고 2019년에는 선학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이상으로 와리스 디리에 관한 실화를 다룬 책 사막의 꽃, 영화 데저트 플라워 소개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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